[콘텐츠 신화를 창조한다](10)CCR 장언일 개발본부장

 ‘위험한 도전을 즐기는 사나이’

 CCR의 장언일(35) CCR 개발본부장이 지금도 자주 듣는 소리다.

 “94년 아스토니시아로 유명한 소프트라이가 설립한 게임스쿨에 들어가면서, 개발쪽으로 첫 발걸음을 뗐습니다. 그때 만났던 이원술, 서관희 씨 등이 여전히 게임판에 함께 뒹굴고 있으니,10년이란 세월도 산업이란 그릇을 만드는데 짧은 시간인 듯 합니다.”

 석달을 게임스쿨에서 수학한 그는 독자적 게임 개발에 착수한다. 훗날 그의 개발 인생에 자양분을 됐겠지만, 그때 만들어진 2∼3개 작품은 그야말로 처절하게 망가졌다. 굳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뼈저린 수업이었다.

 이후 장 본부장은 3D 엔진 개발에 몰두한다. 이때가 96년으로 조기용 현 웹젠 상무(CTO)가 이후 한국 풀 3D 온라인게임의 새장을 열게되는 ‘뮤’의 엔진을 만들기 시작했던 시기였으니 3D 만큼은 그도 몇손가락안에 드는 선구자였던 셈이다.

 “한참 동안 실패를 거듭하면서 게임 개발이 만만치 않은 작업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제 생애 최초의 3D 롤플레잉게임(RPG)인 ‘붉은매’를 시작으로 ‘셰퍼드’까지 만들고, 그 과정에서 뭉친 팀을 이끌고 CCR에 합류한 것도 이런 험난함을 깨닫고 난 후 였습니다.”

 98년 11월 CCR 식구가 된 후 그는 패키지게임 시장은 더이상 희망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윤석호 사장과 의기투합해 온라인게임 개발에 착수한다. 기획은 물론이고, 장르, 게임명까지 여러차례 시행착오가 계속됐다. 2000년 후반부터 공상과학(SF)이란 장르의 온라인게임을 만들자는 쪽으로 방향이 재설정됐고 그에 매진한다. 그것이 지금의 ‘RF온라인’이다. 당시 국민 게임이라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CCR의 ‘포트리스’ 신화가 없었다면, 지금의 RF온라인은 세상에 태어나기 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파이널판타지’, ‘블레이드러너’ 같은 암울한 분위기가 아니라 경쾌하고, 밝은 SF를 구현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생기있는 화면과 캐주얼한 그래픽으로 SF를 만들면 한국정서에 통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4년여의 열정을 쏟아부어 ‘RF온라인’은 지난해 8월 오픈베타서비스를 시작한다. 오픈베타 게임 인기 1위를 차지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두달만에 상용화에 돌입, 현재에 이르고 있다.

 “10년 개발 여정에서 ‘RF온라인’ 하나를 건졌습니다. 지나칠 정도의 찬사도 받았고 상용화 이후 아쉬움도 많이 샀지요. 모두가 배움의 시간이라고 믿습니다. 업데이트 등 당분간은 RF온라인 하나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틀이 잡히면 그때 차기작을 조심스럽게 추진하겠습니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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