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e스포츠협회가 출범도 하기전에 불협화음을 내는 데에는 몇가지 요인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요인은 새로 출범하는 e스포츠협회가 회장사의 의지에 좌우될 수 밖에 없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e스포츠 협회는 사무국이 있기는 하지만 실무만 담당할 뿐 실질적인 협회 운영 방향은 회장사가 모두 맡아서 처리하는 모양새다. 회장사 경합에서 밀려난 KTF측이 ‘잘해보라’는 식으로 투정을 부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TF 입장에서는 지난 5년간 e스포츠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해오며 정성을 들여왔는데 주도권을 타사에 넘겨줬으니 흥이 깨질만도 한 상황이다.
SK텔레콤과 KTF의 라이벌 의식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회장사 자리를 놓고 벌인 선의의 경쟁이 갈수록 도를 넘어 감정싸움으로 번져버리면서 결과적으로 의욕적으로 출범하는 제2기 e스포츠협회를 출발부터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이사진이 대부분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기업이라는 점도 협회의 방향 설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게임리그를 직접 개최해온 온게임넷과 MBC게임은 e스포츠협회 운영 방향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통합리그 개최 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장은 양 방송사에 대한 게임대회 중계 배분 문제만 해결하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표면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그동안에는 스폰서를 유치해 게임리그를 직접 만들고 운영해 왔지만 통합리그가 정착되면 게임대회 주최권은 협회로 넘어가게 된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중계료를 내고 게임대회를 방송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들은 통합리그를 만드는데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 대의를 위한 화합이 최우선 과제
제2기 e스포츠협회가 당초 취지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두가 하나로 뭉치는 화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수년간 아무런 과오 없이 e스포츠를 이끌어온 기존 협회의 뒤를 이을 새로운 협회를 출범시킨 것은 단순히 회장사만 바꾸자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럴 요량이었으면 새롭게 출범식을 할 이유가 없다. 대기업을 회장사로 내세운 것도 단순히 협회의 위상만 높이자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e스포츠 판을 넓히자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번 제2기 e스포츠협회 출범을 앞두고 벌어진 회장사 선임과정에서 이같은 대승적인 취지보다는 기업간의 자존심 싸움이 우선시되는 듯한 인상을 풍긴 것이 사실이다.특히 일각에서는 협회나 e스포츠 분야에 더 많은 돈을 쓸 기업이 회장사를 맡는 것이 당연하다는 극단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 양사는 ‘회장사에서 떨어지면 e스포츠를 포기하겠다’는 협박성 짙은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e스포츠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회장사에 출마한 기업이 오히려 e스포츠를 자존심 싸움을 위한 볼모로 내세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이같은 멘트는 단순한 선거용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도 그 싸움이 지리하게 계속되는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제2기 e스포츠 협회 출범을 주도해온 한 관계자는 “한 기업을 대표로 뽑아 모든 것을 맡기자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잘해보자는 것이 취지”라며 “e스포츠 협회 회장사 자리는 절대 과시용이 되거나 e스포츠의 미래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자리가 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관점에서 제2기 e스포츠협회 출범 취지가 대기업의 힘을 모으자는 것이지 경쟁에서 이긴 한쪽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은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협회로서도 한 기업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많은 비용을 투자하기 보다는 여러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최근 들어 e스포츠 관련 인사들은 “대의를 먼저 생각하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는 화합의 마인드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서로에 대한 인정이 신뢰 회복의 토대
서로의 업적과 역할을 인정하는 분위기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로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돼야 신뢰가 되살아나고, 그런 연후에야 앞으로 맡을 역할을 합리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에 e스포츠 문화는 게임전문 방송사들이 만들어 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이들은 게임리그를 정례화하고 팬을 동원할 수 있는 인기 스타들을 만들어 냈다. 지금까지도 프로게이머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이들이 만드는 대회에 상금을 걸고 스폰서를 해준 기업들의 노력도 적지 않았지만 이들 방송사가 없었다면 지금의 e스포츠 문화는 기대할 수 없었다.
최근 방송사간에 통합리그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에게 무조건 통합리그를 성사시키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통합리그를 개최하면 가장 큰 불이익을 당하는 쪽은 이들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통합리그 문화가 정착된 연후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게임리그 주최권을 포기하고 대회 중계만 맡으라거나 나아가 중계료를 내고 방송을 하라고 하면 크게 반발할 것이 뻔하다. 이에 지금까지 이루어진 게임리그의 구조를 아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통합리그를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의 기득권일 인정해 주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e스포츠 관계자들은 특히 그동안 e스포츠협회를 맡아 오면서 많은 출혈을 감수해온 기존 회장사와 5년 이상 프로게임단을 운영하며 많은 자금을 투자해온 KTF의 경우도 비슷한 경우다. 이들에게 새로운 회장사가 정해졌으니 더이상 e스포츠 협회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식의 분위기는 도움이 안된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특히 회장사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기업들을 제치고 회장사가 된 만큼 보상차원에서라도 몇곱절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한 관계자의 이야기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또 협회 차원에서 기존에 e스포츠계를 이끌어온 기업들이 쌓아온 노하우와 고민의 결과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회장사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진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후 공청회를 통해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협회가 하루 빨리 정착돼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등의 독불장군식 발상은 빨리 버려야 한다. ‘내 생각되로 안되니 할일이 없다’거나 ‘잘해보라’는 식의 무책임한 생각은 불화만 조장할 뿐이다. 협회와 e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선의의 경쟁은 모두가 환영한다. 하지만 e스포츠를 볼모로 한 위해 행위는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지난해 치러진 게임리그는 개인리그 7회와 팀리그 6회 등 총 13회에 달한다. 7번의 개인전 결승전과 6번의 팀리그 결승전이 있었다는 얘기다. 온게임넷과 MBC게임 등 양대 게임 방송사가 지난 한해 동안 3회의 시즌동안 팀리그와 개인리그를 각각 1번씩 치른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한 시즌에는 평균 4개 대회가 동시에 치러졌다. 프리미어리그가 열릴때는 5개에 달했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은 양대 방송사의 팀리그와 개인리그에 많으면 5번까지 겹치기 출연을 해야만 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 심지어는 일요일까지 방송대회에 나가야 하는 선수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경기를 소화하다보니 자연히 경기의 질이 떨어졌다. 팀에 따라 주력하는 리그와 비주력 리그가 갈라지고 선수들도 자신이 타깃으로 삼은 대회가 생겨났다. 팀에 따라서는 2군 선수들로 대회를 땜빵하기도 했고, 선수들과 방송사는 경기의 질보다는 속전 속결로 급박하게 진행되는 경기만을 원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팬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선수들은 거의 도박에 가까운 전략을 들고 나왔다. 방송사는 시청률 올리기에만 급급한 경우도 발생했다. 한 게임단 감독은 지난해 벌어진 대회의 평균 경기 시간이 17분 이라는 충격적인 분석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대회가 이렇듯 많이 열리다 보니 최고의 빅이벤트가 돼야할 결승전이 무려 13번이나 치러졌다. 매달 1번 이상 결승전을 치른 셈이다. 그런만큼 우승의 가치가 떨어진 것은 자명한 사실. 한 대기업 프로게임단 감독은 “임원진에게 대체 어떤 대회가 진짜냐”는 맥빠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토로한다.
뿐만아니라 이렇듯 많은 대회가 열리다 보니 관중 동원능력도 점차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실제 각종 대회 결승전 행사는 지난해 여름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열린 ‘SKY프로리그’ 1라운드 결승전에 10만 관중이 몰린 이후로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얼마전 열린 결승전에는 관중이 2000여명밖메 모이지 않는 부진을 보이기도 했다.결승전이 너무 자주 열리다 보니 희소성이 크게 떨어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통합리그 논의는 이같은 상황을 타개해 보자는 의도로 출발했다. 너무 잦은 대회 일정으로 낮아진 e스포츠 대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통합리그 개최가 절실한 시점이 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통합리그의 목적도 너무 많은 경기에 혹사당하는 스타플레이어들을 보호하고 대회의 희소성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 나가고 있다.
이는 결국 경기의 질을 높이고 보는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대회의 중심을 잡아 줌으로써 보다 많은 팬을 확보하는 밑거름이 될 것을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e스포츠의 저변을 더욱 확대하고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기업과 매체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도 통합리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협회 차원에서 주최하는 통합리그가 벌어지면 지금보다 훨씬 큰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킴으로써 e스포츠를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실상부한 대중 스포츠 문화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그렇지만 협회에서도 그동안 e스포츠 판을 일구어온 방송사에 통합리그를 강제할수는 없는 상황이다. 통합리그를 추진하는 목적이 단순히 대회 수나 일정을 줄이자는 것이 아닌데다 그동안 게임대회를 주최해온 방송사에도 불이익이 돌아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방송사에 협회의 목적을 위해 일방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적절한 대안이 필요하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통합리그 개최 문제가 난항을 겪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과정이다.
하지만 방송사들도 선수들을 혹사시키는 대회 늘리기 경쟁은 멈춰야 한다. 또 경기의 질보다는 시청률을 우선시하는 시각도 버려야 한다.어떻게 하면 방송사들의 일방적인 희생 없이 선수들의 부담을 줄여주면서 권위있는 통합리그를 만들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선수들에게 고른 출전기회를 주면서도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는 대회를 만들어 나갈지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순기기자 김순기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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