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솔루션센터 탄생 비화
설립 5년도 되지 않은 한국EMC는 2000년도 매출 집계 결과 세계에서 4번째로 매출이 큰 지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그 해 미국 뉴올리언즈에서 열린 본사 시무식 때, 최우수 지사장상을 수상하고 내려가는 나를 향해 내 보스인 본사 부사장이 한국식 큰절을 네 번씩이나 해서 화제가 된 것도 그런 연유였다.
그러나 2000년 말경부터 미국의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하면서 IT업계에도 엄청난 위기가 찾아왔다. 북미 시장이 회사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EMC로서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본사의 경비절감을 위한 정책들이 점점 강해지던 2001년 여름, 구조 조정에 관한 얘기가 처음으로 들려왔다. 미리 줄일 인원을 정해놓고, 더구나 공공연하게 발표까지 해가면서 감원을 하기는 1979년 설립 이후 EMC 본사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라는 부연설명이었다.
국가 별로 인원이 할당되다시피 했다. 부서 별로 인원을 산정한 후, 나라 별로 집계해서 통보하는 식이었다. 처음 하는 구조조정이라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한 듯 정식으로 발표가 되자마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나는 강하게 반론을 펼쳤다.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고, 비록 본사 차원의 매출 신장에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는 규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1995년 지사 설립 이후 분기 마다 매출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나라에 구조조정은 맞지 않는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오히려 나는 직원을 더 채용하겠다고 맞대응했다.
대응 논리가 부족했던 본사가 주춤했다. 마침내 다른 나라에서 인원을 더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테니 한국은 현재 인원대로 가라는 답이 왔다. 1차 구조조정의 회오리를 이렇게 피해가게 됐다. 그런데 1차 구조조정이 채 완료되기도 전에 또 다시 2차 구조 조정안이 공표됐다. 이번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에 아예 투자를 해달라는 역공을 펼쳤다.
본사로서는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일 게 분명했고, 아니나 다를까 거의 모든 부서의 장들이 투자 요청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해왔다. 한국 지사장이 뭔가 크게 착각하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였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게 당시 내 전략이었다.
“여지껏 한국지사가 기여해온 데 비해 그에 상응하는 투자가 없었지 않느냐? 인원을 삭감해야 하는 절박함은 공감하지만 한국은 노동생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겠다. 그러니 한국에 솔루션 센터를 이 기회에 설립해 달라.”
나는 한국EMC의 시장 성장을 고려할 때 본사가 투자한 만큼 효과를 올릴수 있으며 그간 한국 시장이 기여한 만큼 응분의 대가를 요구한다는 면에서 결코 잘못된 생각이 아니라는 분명한 판단이 있었다.
상황은 반전됐다. 적어도 한국에 관한 한, 투자 요청이 정당한지를 검증하는 쪽으로 관심이 쏠렸다. 인원 축소는 당연히 논외로 밀려났다. 절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물론 이 투자에 대한 주장 역시 그저 소나기를 피하기 위한 전술이 아닌 실제 결실로 이어진 것도 물론이다.
한국에 앞서 일본에 솔루션 센터를 개설할 때 본사에서 파견되어 모든 일을 주관했던 본사 직원과 먼저 타당성부터 검토하라는 답변이 왔다. 몇 달 후 일본에서 본사 사장을 만났다. 회의 시작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사장의 구두 승인을 얻어냈다. 일단 350만 달러를 투자하고 2년 이내에 추가로 더 투자하는 조건이었다. 다른 나라에선 2차 구조조정이 진행 중일 때, 한국에서는 인원 삭감은커녕 솔루션 센터를 개설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그렇게 한국EMC의 솔루션센터(인포토피아)가 탄생했다.
그 해 가을, 일본에서 ‘EMC배 WGC 월드컵 골프대회’가 열릴 때였다. 본사 사장이 전달해달라고 했다면서 본사 마케팅 소속 직원이 책을 한 권 건네 주었다. ‘Execution’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책에는 “헤이워드(Hayward: 필자의 미국 이름), 당신이 ‘내년에 영업이익을 높이는 게 내 목표’라고 말할 때, 나는 당신에게, 아니 한국에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라는 격려의 쪽지가 꽃혀 있었다.
hayward.jeong@atempo.com
사진: 지난 2001년 EMC 월드컵에서 한국 고객들을 위한 타이거 우즈 클리닉을 열고 기념 촬영을 했다. 타이거 우즈 오른쪽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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