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통신·방송융합 논의 `실마리`

 1999년 12월 28일 국민의 정부는 ‘통합방송법’을 통과시켰다. 흩어진 여러 법령을 하나로 담아낸 의미를 넘어 정치권력에 휘둘린 방송의 정치적 독립에 초점을 맞춘 게 특징이다. 최근 통신·방송융합 논의를 위해 국무총리실에 기획단(TF)이 꾸려졌다. 5년 전과는 정치경제, 사회문화 환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1999년도에는 방송을 개혁대상으로 봤다. 그래서 대통령 자문기구로 정치적 형태의 ‘방송개혁위원회’를 운영했다. 지금은 성격이 다른 전문 자문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통신·방송융합 정책을 합리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기능 조정이 필요한지에 대한 순수한 자문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또 통·방융합 논의를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하려면 몇 가지를 분명히 해둬야 한다.

 첫째, 통신계와 방송계 중 어느 편을 들어줄 것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국가와 산업, 국민의 입장에서 편익을 어떻게 증대시키며, 경쟁력 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부분의 토론이 양쪽을 갈라놓고 논쟁을 부추기거나, 시청자 편익 증진과 동떨어진 정부 조직개편과 법 개정 문제에 매달린다. 제사보다는 젯밥에 관심을 두지 말았으면 한다.

 둘째, 통·방융합 신규 서비스에 대한 명쾌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융합서비스로는 위성 및 지상파 DMB, 데이터방송, iCOD(일명 IPTV), 웹케스팅 등이 있다. 그러나 이미 DMB와 데이터방송은 방송으로 규정해 개정 방송법에 따라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기술적 문제도 대부분 해결됐다.

 iCOD는 개인이 요금을 내고 주문한 비실시간 콘텐츠를 보는 광대역통합망(BcN)의 한 서비스다. 방송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는 방송 개념은 아닌데 일각에서 과장했다. 이는 BcN으로 통신인프라를 고도화하려는 국가 프로젝트로 정부와 민간의 대규모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구축이 지연되면 경쟁국에 뒤처져 국가 산업 발전의 후퇴를 불러올 수 있다.

 세째,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의 핵심은 제한된 주파수 채널 자원을 방송사업자에 주기 때문에 각종 규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국 네트워크를 가진 지상파 방송 3사가 종합편성(보도·교양·오락 편성)권을 갖고 방송 시장을 과점해 영향력이 막대하다. 이 때문에 방송 3사는 공익성뿐 아니라 보도의 공정성, 객관성을 요구받는다. 방송 규제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다. 기술과 서비스의 융합과 관련한 통·방융합 논의와는 별개다. 과점 상황 해결, 방송 소유 겸영 등 진입규제, 방송광고 활성화, 방송정책권 등 일련의 방송계 현안 문제들은 별도 기구를 구성해 논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넷째, 구조개편위원회 구성은 단순히 통신과 방송의 문제만으로 논의할 게 아니다. 크든 작든 정부 기능과 조직개편 사항이 때문이다.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과 직무에 대한 분석과 평가, 예상 효과를 면밀히 검토해 종합적으로 개편 방향과 범위를 잡아야 한다. 일부 사안에 대해 관계 기관의 조정이 어렵다고 정부조직을 부분적으로 개편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선공약도 중앙정부의 역할과 기능 조정을 위해 민·관 합동의 ‘정부조직진단위원회(가칭)’를 설치, 먼저 조직을 진단하고 필요시 개선토록 했다.

 끝으로, 융합기구 논의에 영국의 OFCOM과 미국의 FCC 모델을 예로 많이 드는데 나라마다 다른 방송과 통신의 역사를 고려해야 한다. 영국은 공사 형태의 OFCOM을 만들었지만, 위원임명권과 방송정책권(법률제정권 포함)을 정부부처가 행사한다. 더욱이 시장 자율화에 불필요한 각종 규제를 대폭 줄였다. 미국은 1996년 ‘개정 통신법’을 통해 FCC 규제를 대부분 풀었으며 디지털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정부의 직접 규제보다는 시장촉진자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어느 나라도 통·방융합 서비스를 공영방송처럼 강력히 규제하지 않는다. 기구 형태는 달라도 규제완화, 경쟁과 시장촉진, 방송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적 배려가 세계적인 흐름이다.

 세계 통·방융합 기술과 서비스를 선도하는 우리나라는 각국의 규제기구를 모방만 할 게 아니라 우리만의 경쟁력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제발 국민과 국가경제 발전, 관련 산업의 세계경쟁력 확보를 위해 차분하게 건설적인 통·방 논의를 진행했으면 한다.

◆최수만 정통부 장관정책보좌관 smchoi5004@mi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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