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스트 +244]제2부:사례연구②반도체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2003년 세계 플래시 메모리 시장 점유율

반도체가 월드베스트에 올라서면 국가 경쟁력이 1위로 올라선다.

80년대 일본이 D램을 포함한 반도체 국가로 우뚝 서며, 전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압도한 사례가 그러하다. 90년대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로 대변되는 윈텔(윈도+인텔)의 힘으로 미국은 IT 경쟁에서 파워를 보여줬다. 우리나라 반도체는 삼성전자를 앞세워, 세계 반도체 시장을 정조준했다. 이미 D램, 플래시메모리, S램 등 메모리 시장에서 1위로 등극했다. 삼성전자는 D램 시장에서 92년 1위로 올라선이래, 지난해까지 13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또 플래시메모리 시장에서는 2003년 1위 등극에 성공했으며 S램 역시 95년 이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아직 반도체 전체 시장에서 1위인 인텔에 이은 2위지만 격차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엠텍비전, 코아로직 등 다른 반도체업체들도 각기 국내 시장에서 힘을 비축하며 세계 1위 등극의 날을 손꼽고 있다.

장성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부분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로 △선택과 집중 △경영진의 결단과 리더십 △우수 인력 확보 △후발자 이익 극대화 전략 △메이저시장 공략 △정부지원 등을 꼽는다.

◆성공요인4가지

#성공요인1, “선택하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83년은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추진키로 결정한 시기다. 애초에 S램을 주력 품목으로 검토했으나 D램을 선택했다. D램은 당시에도 일본을 위시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어, 아직 새내기였던 삼성전자에겐 버거운 시장이었다. 그러나 시장 규모가 가장 컸다. 삼성전자는 D램을 선택했고 꼭 10년만인 92년 D램 시장 1위 타이틀을 가져갔다.

삼성전자의 선택에서 돋보이는 대목은 88년 4M D램 개발 당시다. 적층식인 스텍으로 갈지 아니면 트랜치로 갈지 전세계 유수 업체들이 고민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리더로서 스텍을 택했고, 92년 D램 1위는 바로 4M D램으로 이뤘다. 경쟁업체들은 트랜치를 택했다가 서둘러 스텍으로 옮겨오며 패배의 잔을 들었다.

‘선택과 집중’이란 명제를 놓고 삼성전자는 지난해 시스템LSI 5개 분야를 꼽았다. 수천개 시스템LSI 중 △디스플레이드라이버IC(DDI) △모바일CPU △칩카드IC △CMOS이미지센서(CIS) △옵티컬플레이어용SoC를 선택한 것. 삼성전자 관계자는 “DDI는 지난 2002년 1위 자리를 차지했으며 나머지 4개 품목도 2007년까지 월드베스트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방향성 갖춘 선택을 한다.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은 지난해 삼성전자 모바일 솔루션 포럼을 만들고 모바일 관련 칩 시장 주도를 선언했다. 인텔의 ‘인텔개발자포럼(IDF)’을 넘어설 씨앗인 셈. 삼성전자는 모바일이란 방향성을 화두로, 모바일메모리, 플래시메모리, DDI, 모바일CPU, CIS 등에 집중할 계획이다.

중견업체도 뛴다. 코아로직은 멀티미디어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MAP)를 선택해 세계 1위를 노린다. 코아로직은 초기에 지문인식솔루션, 웹카메라 등도 가져갔으나 이제 모바일멀티미디어SoC 지향으로 한 우물을 판다.

#성공요인2, “결정하면 끝까지 간다”

불황기때 몸을 사린 이는 호황기때 단 열매를 따지 못한다는 사실은 반도체업체 CEO들은 모두 안다. 그러나 불황기 때 투자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74년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려할때 그룹내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는 반도체 사업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내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시작인 셈.

삼성전자의 투자를 한 마디로 보여준 것은 87년. 삼성전자 관계자는 “당시 누적적자가 수천억에 이르는 상황에서 다시 수천억을 붇는 3라인 구축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한다. 당시는 일본 선두업체들도 불황 여파에 움추린 상황. 삼성전자는 3라인에 투자를 결정, 88년 한해에만 3라인에서 쏟아지는 1M D램으로 13년간 누적적자를 해소했다.

92년 5라인에 300mm 웨이퍼를 도입한 것도 ‘위험을 품은 과감한 투자’의 사례다. 경쟁사들은 머뭇거렸다. 그도 그럴것이 300mm 웨이퍼 도입 실패는 3조원 가량의 손해가 예상됐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회고록에서 ‘피를 말리는 고통을 감내하며 결정을 내렸다’고 적는다. 93년 5라인 가동은 삼성전자에게 메모리 시장 1위란 열매를 선사한다.

이른바 ‘자크로 회동’도 리더십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자크로는 일본의 호텔 이름으로, 이 자리에서 2001년 삼성전자는 도시바가 제안한 합작을 논의했다. 도시바는 당시 낸드형 플래시메모리 시장점유율이 60∼70%인 1위 업체. 삼성전자는 도시바의 제의를 거절했고 2002년 낸드형 시장에서 도시바를 2위로 밀어낸다.

#3 “사람이 반도체를 만든다”

인재 중시는 지나치는 법이 없다. 오늘의 삼성전자 반도체를 만든 1등 공신인 진대제 현 정보통신부 장관를 비롯해 삼성전자 반도체를 이끄는 황창규 사장, 시스템LSI를 맡고 있는 권오현 사장에 이르기까지 인재다. ‘Mr. 반도체’인 진대제 장관이 16M D램 개발의 주역이고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사장이 256M D램 개발을 이끌었다. 권오현 사장은 64M D램 개발의 주역. 이건희 회장이 인재를 알아보고 진대제 장관과 황창규 사장을 끌어왔기 때문에 얻은 결실이다.

황창규 사장은 매년 해외 유수 대학을 다니며 강연을 한다. 강연 후에는 자연스럽게 강의를 들은 청중을 상대로 인재 채용에 나선다. 2002년 캠브리지, 2003년 스텐퍼드, 2004년 MIT 등을 부지런히 다녔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중국 칭화대, 북경대 등에서 강연하며 인재를 모아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전자는 아예 사내에 공과대학을 만들고 직접 인재를 키운다. 황창규 사장이 총장을 겸직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인정한 유일한 사내 대학”이라고 설명한다. 또 성균관대학과 연계해 사내에서 석사와 박사까지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졌다. 여기에 지역전문가, MBA 등을 통해 인재 키우기에 투자하는게 삼성전자 월드베스트의 밑바탕을 다진다.

#성공요인4, “끈질긴 2등의 면모를 보여줘라”

누구도 1등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83년 11월 삼성전자가 64K D램 개발에 성공했을 때 업계 전문가들은 일본 업체보다 4년 뒤쳐졌다고 지적했다. 84년 10월 256K D램 개발하고 격차를 3년으로 줄인 후 86년 7월 1M D램 개발로 2년, 88년 2월 4M D램 개발 때는 6개월까지 따라잡았다. 90년 7월엔 16M D램 개발에 성공하며 일본과 기술 격차를 ‘제로’로 만들었다. 그 후 92년 8월 64M D램부터 94년 8월 256M D램, 96년 10월 1G D램은 일본을 추월하며 월드베스트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삼성전자의 역전에는 후발자 이익의 극대화란 측면이 있다. 후발 사업자로서 선진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며 선발 업체들이 거친 시행착오를 최소화해 개발 기간을 단축한 것. 여기에 삼성전자의 복합적 개발 시스템이 한 몫한다. 같은 시기에 현재 상용화 제품과 함께 다음 세대 제품 개발에 착수하는 독특한 삼성식 시스템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를테면 개발팀 한 곳이 상용 제품 개발을 하고 있다면 같은 시점에 다른 팀은 상용제품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또 다른 팀은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는 셈”이라고 설명한다.

비메모리반도체 중견업체들도 아직은 월드베스트가 아니지만 끈질긴 2등을 고수한다. 월드베스트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모자란 ‘244품목’을 채울 끈질긴 2등이 비메메리반도체분야에 즐비하다.

[인터뷰]조중휘 차세대반도체사업단장

 “차량용 반도체, 로봇센서기반 반도체, 바이오용 반도체에서 월드베스트를 만들어야합니다”

차세대성장동력반도체사업단장인 조중휘 인천대 멀티미디어 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반도체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한다.

조 단장은 “삼성전자가 월드베스트지만 대부분 메모리에 한정돼 있다”며 “반도체에는 메모리만 있는게 아니라, SoC, 파운드리 등 더 큰 시장이 즐비하다”고 말한다.

물론 조중휘 단장이 삼성전자의 몫을 깎아내는 것은 아니다. 차세대반도체사업단장으로서 ‘한국의 반도체’를 고민하는 것.

조 단장은 “순수 정보통신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일테면 휴대폰, 랜, 디지털TV 등에 쓰이는 칩들은 (삼성전자 등) 민간 기업들이 맡아서 도전한다”며 “민간기업이 위험부담을 느껴 도전하기 힘든 분야에 관심을 갖고 월드베스트를 만들어내야한다”고 말한다.

조 단장은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이 P램, F램 등 비휘발성 메모리 시장을 노려 월드베스트를 만들겠다는 결정을 지지하면서도 Re램 등 다른 종류의 비휘발성 메모리 개발에도 매력을 느낀다. 민간이 못하는 영역을 차세대성장동력반도체사업단같은 조직이 채워야한다는 조 단장의 지론과 이어지는 맥락이다.

조 단장은 ‘한국 반도체 월드베스트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반도체 장비 산업의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산업을 연계한 분야에서 장비 산업이 커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조 단장은 “주성엔지니어링 등 몇몇 업체들이 자기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해내고 있어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조 단장은 “패키징 산업도 테스팅 산업과 함께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한다”며 후공정산업에 대한 관심도 빼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