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강국을 건설하자]석학에게 듣는다(2)마크 리드 예일대학교 교수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명은 구리 와이어(copper wire)와 노광(lithography) 기술이었습니다. 이 두가지를 이용한 패브리케이션(fabrication)이 반도체 집적화를 주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고집적화된 기기의 전력 문제는 현재의 패러다임에서 해결하기 곤란합니다.”

 마크 리드(Mark Reed) 예일대학교 교수는 나노 기술을 사용해 분자 수준에서 각종 기기들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산업은 물론 우리의 삶 전체가 크게 바뀔 것이라고 한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나노 기술이 어떻게 뻗어나가 어디에 쓰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물질 세계의 근본 특성을 이해하려는 나노 관련 과학자들의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나노는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나노 기술은 초소형 기기를 만드는 완전히 다른 방법을 제시할 것입니다” 

 리드 교수는 예일대학교 전자공학 및 응용물리학과 교수로 분자 단위의 셀을 만들어 회로를 제작하는 기술 등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분자 단위의 크기를 가진 메모리 소자 등의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를 위한 전자의 수송 등을 집중 연구하고 있는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그의 연구는 나노 기술을 활용, 더 작고 성능이 좋으면서도 자원의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기기의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각종 반도체 및 디지털 기기의 성능은 계속 향상되는 반면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현재의 초미세 제작 기술이 조만간 한계에 달할 것이란 점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전력 소모입니다. 현재의 기술로는 비약적으로 늘어나는 기기의 전력 소모량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는 나노 기술의 발전이 각종 기기 및 소자를 제작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분자 메모리 등 분자 수준의 기기를 제작하면 전력 소모와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신체에 이식 가능한 칩 등 지금까지 생각할 수 없던 다양한 응용 분야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리드 교수는 초보적인 분자 메모리가 상용화되면 생산 단가가 크게 하락, 저가의 어플리케이션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능적으로는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생산 비용이 기존 반도체에 비해 훨씬 저렴하므로 고기능을 요구하지 않는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에 폭넓게 쓰일 수 있다는 것. 몇 개의 분자들을 모아 하나의 메모리를 만드는 기술은 10년 안에 등장할 것으로 그는 예측한다.

또 분자 메모리는 그 재료 특성이 주변 환경 및 생명체의 구성과 유사하므로 보다 환경·인체친화적인 기기를 만들 수 있고 이에 따라 건강·보건 등을 위해 신체에 이식하는 칩의 상용화를 앞당길 전망이다. 이럴 경우에 나노 기기는 인체와 전자 시스템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역할을 하게 된다.

리드 교수는 “나노 전자공학의 연구 분야를 ‘재료­-기기(device)-통합­(integration)-시스템’ 등으로 분류할 때 우리는 아직 재료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기기의 기초적인 제작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인정한다.

 분자 나노와이어·탄소나노튜브·양자 등 나노 기기 제작을 위한 재료와 이를 이용한 전계방출디스플레이(FED), 반도체 등의 기기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 연구가 진척됐지만 이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통합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그는 아마도 수년 내에 나노 기기의 통합에 관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현재 우리는 우리가 모른다는 것만을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꾸준한 연구가 계속되면 결국은 보다 작고 고집적화된 기능의 소자를 저전력으로 작동시키는 나노 기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그는 기대했다. 이를 위해서는 나노 수준의 재료와 기기의 특성을 계속 연구해 나갈 수 밖에 없다.

 리드 교수는 과학 발달의 과정에서 종종 예상치 못했던 발명이나 발견이 도약을 일으켰던 것처럼 나노 기술도 도약의 계기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나노 기술의 상용화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나노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나노 기기는 분명 존재한다고 리드 교수는 확신한다.

그는 “트랜지스터가 처음 발명된 것은 1947년이었지만 이를 이용한 집적회로(IC)가 등장한 것은 1958년이 돼서였다”며 “사람들이 바로 눈앞에 있는 트랜지스터의 용도를 발견하는데 10년이나 걸렸지만 이후 IC는 놀라운 발전을 했다”고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나노 기술의 활용 방안도 현재는 뚜렷하지 않지만 반드시 등장해 우리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한다.

 리드 교수는 “한국 나노 연구계의 전반적인 수준은 매우 높으며 개개 연구진도 우수할 뿐 아니라 나노 기술 발전을 위한 정부의 정책 및 자금 지원 투자도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또 나노 제작 기술과 상용화도 높은 수준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나노 연구가 지나치게 눈앞의 상용화에만 몰두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한국에서는 나노 ‘과학’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즉각적 상업화만 강조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나노 ‘기술’ 못지 않게 나노 ‘과학’에 대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명함에 나와있는대로 물리학자이자 공학도로서 나노 과학의 연구와 이의 산업화에 모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리드 교수. 나노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에게서는 대가의 권위보다는 학자의 순수함이 묻어났다. 그가 파헤치는 나노의 세계가 언제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한세희기자@전자신문, hahn@

[마크 리드 교수는…]

마크 리드 교수(49)는 예일대학교 전자공학 및 응용과학과 교수로 분자 수준 메모리 등 분자 및 양자 기기·전자 수송·나노구조·바이오MEMS 등의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고 있다.

1983년 미국 시라큐스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연구원을 거쳐 1990년부터 예일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9년 예일대 해롤드 호킨슨 석좌교수로 임명됐다. ‘분자 나노공학’(Molecular Nanoelectronics) 등 5권의 저서와 150편의 논문을 저술했으며 21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또 반도체·나노 관련 각종 회의와 심포지엄 등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리드 교수는 2001년 후지쯔 ISCS 양자기기상 (Fujitsu ISCS Quantum Device Award), 2002년 예일대 과학공학협회의 기초·응용과학기술진보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으며 지난해 미국 물리학회의 펠로우로 선임되기도 했다.

현재 분자 메모리 등 분자 단위 기기 제작과 나노시스템, 나노 특성의 측정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분자 메모리란?]

마크 리드 교수가 연구하는 분자 단위의 기기 제작은 분자 단위의 셀을 만들어 회로를 형성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또 이를 위해 분자 시스템 내에서 정보를 담은 전자의 수송에 관한 연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리드 교수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나노 기술을 활용한 분자 단위의 메모리 제작이다. 현재 몇개의 분자로 구성된 분자 패킷을 이용, 메모리를 제작하는 기술이 상당한 진척을 보였으며 장기적으로 1개의 분자로 메모리를 제작한다는 목표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 나노 수준의 기기들의 특성을 측정할 수 있는 측정 및 테스트 기술도 연구 중이다.

리드 교수는 분자 메모리가 상용화되는데 약 1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고가의 노광 장비와 미세 와이어에 의존하는 현재의 초미세 소자 제작 기술의 패러다임을 벗어날 수 있어 기존 방식의 고비용 문제와 전력 집적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또 분자 수준이라는 특성상 주변 환경이나 인체에 이식해도 거부 반응이 적다는 점도 장점. 칩의 신체 이식 등이 자유로와지면서 새로운 수준의 ‘휴대성’(portability)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리드 교수는 1개의 분자로 메모리를 제작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지만 이것은 현재로서는 과학의 영역일 뿐 산업화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비용 대비 효과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