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먹는 `블랙홀 기금` 제재

 기획예산처의 기금운용 평가결과는 방만하고 부실한 부처별 기금 운용실태에 대한 철퇴로 평가되는 동시에 향후 낮은 평가를 받은 기금에 대해 지원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따라서 낮은 평가점수와 지적을 받은 기금 및 일부 사업들에 대한 궤도 수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과학기술인들의 숙원사업으로 꼽히면서 이제 막 시작된 과학기술인공제회사업은 정부재원조달이 어려워질 것이 확실시돼 출발부터 삐꺽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방송발전기금을 ‘방송영상 콘텐츠투자조합’에 출자키로 한 부분에 대해서도 기획예산처는 법적 근거가 없으며 중복지원이라고 지적, 향후 사업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란 전망을 낳고 있다. 문화산업진흥기금 역시 기금 운용에서 융자·출자지원의 대부분이 게임·영화·애니메이션 등에 집중돼 회수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된다는 점을 지적받으면서 투자위축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해당기금 관련 부처인 과기부·문화부 등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당초 정해진 방침이 있는 만큼 향후 예산배정을 위해 기본방침에 대해 지속적으로 조율해 나가겠다”는 입장이어서 향배가 주목된다.  

 ◇방송발전 기금=방송계에서 늘 지적돼온 방송발전기금의 문제점이 기획예산처의 경영개선 및 사업운영 부문 기금 평가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특히 매년 지적돼온 사안이 올해에도 개선되지 않았으며, 타 기금과의 상대평가에서도 최하위 수준의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방송발전기금은 100점 만점에서 70.1점을 기록해 전체 20개 기금 중 15번째, 교육·문화·외교 관련 8개 기금 중 7번째를 차지했다.

 기획예산처는 평가결과 총평을 통해 “방송발전기금이 선택과 집중의 원리에 입각한 사업 운영을 취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복잡다기한 사업구조 내에서 예산 및 타기금과의 중복 가능성있는 사업을 수행, 방송과 직접 연관이 없는 광고·언론·문화예술 등의 사업 및 관련 기관에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세부 지적사항 중 국내 방송영상산업의 지원 기반 조성 및 외주제작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방송영상콘텐츠투자조합’에의 방송발전기금 출자 결정은 법적 근거도 없고 이미 문화산업진흥기금에서 지원하고 있는 분야라는 점에서 ‘국고와 타기금과의 중복성 배제 및 사업영역 조정을 위해 기금 지원 분야를 축소·통합운영해야 한다’는 사업별 지원방향의 원칙을 위배한다고 지적했다. 또 기획예산처는 방송발전기금 징수율에 대해서도 개선해야 할 사안이 많다고 설명했다.

 징수율의 합리적인 수준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가 부족하며 다양한 매체들에 적용되는 징수율의 산출방식 및 산출 근거의 논거를 객관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개선 실적이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MBC와 SBS의 징수율 5.25%의 산정 기준이 모호하고 수신료와 방송광고비까지 징수하는 KBS의 기금 징수율이 지역 및 종교방송사업자의 징수율보다 낮은 이유에 대한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기획예산처는 만약 방송발전기금이 기금의 설치 목적에 부합하는 핵심사업 위주로 사업 구성을 재편한다면 막대한 자금 지출을 절감해 준조세에 해당하는 방송사업자들의 법정부담금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과학기술진흥기금=연간 5400억원대로 운용되는 과학기술진흥기금에서 신규 사업인 ‘과학기술인공제회설립지원사업’이 재검토를 권고받았다. 또 과학기술진흥재단지원사업상의 중복 투자를 개선해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과학기술인공제회설립지원사업’은 사업 목적과 내용의 적합성에서 낙제점(F)을 받았다. 주된 이유로 공제회는 회원들의 납입금으로 운영하는 게 원칙인데, 굳이 ‘기금’에서 공제회를 지원한다는 타당성이 없다는 것. 이에 따라 아예 사업의 존폐를 재검토하라는 권고가 나왔다.

 과학기술부와 과기인공제회(이사장 이승구)는 1년에 200억원씩 5년간 100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상태지만 이번 기금평가결과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이승구 이사장은 “이공계 사기진작을 위한 과기부의 지원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안다”며 “기획예산처와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진흥단체지원사업의 경우에도 △사업대상 또는 수혜자 선정의 합리성과 투명성 △성과평가지표와 성과관리체계의 합리성 △사업운영 방식의 개선노력 등에서 ‘C’를 받아 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이 운영하는 국제학술발표지원·학술활동지원·심포지엄 개최 등에 대한 지원이 중복될 가능성이 커 사업 통폐합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됐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과학의 날 기념식 사업’에서 우수 과학자에 대한 시상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를 과기부가 주관하는 ‘우수과학자포상’사업으로 이동시킬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권고됐다.

 이 밖에 △지방과학기술지원사업 재원을 중앙정부 지원 기금형식의 탈피(개별 지자체 수행) △과학기술문화창달사업의 8개 세부 사업 간 통폐합 △9종류에 달하는 우수과학자포상사업의 수상주지·인원·수상금에 대한 재검토 등이 개선할 점으로 제시됐다.

 과학기술진흥기금의 주요 사업은 과학기술개발연구지원, 과학기술육성사업, 지방과학기술지원, 우수과학자포상, 과학기술진흥단체지원, 과학기술문화창달사업 및 과학기술인공제회지원 등이다.

 ◇문화산업진흥기금=문화상품에 대한 개발, 유통구조 및 시설현대화에 대한 융자와 문화산업전문투자조합에의 출자 등을 내용으로 99년 신설된 이후 현재 2200억원의 정부출연을 받은 문화산업진흥기금의 초점은 ‘2008년 세계 5대 문화강국’ 진입에 어떠한 역할을 하느냐에 있다. 그러나 이 기금은 방송발전기금, 문예진흥기금, 정보화촉진기금, 중소기업창업기금 등과의 중복 가능성 때문에 사용의 한계가 부딪힐 것으로 지적받았다.

 2003년도 융자 실적은 290억으로 2002년 실적(378억)에도 못미쳤으며 최초계획(610억)에 크게 미달했다. 융자 역시 대부분 콘텐츠 업체들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보대출 등의 관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기금운용자의 입장에선 무리한 융자지원이 수혜 업체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판단은 가능하다. 하지만 융자 지원후 적절한 관리를 통해 전체 산업을 부양하는 것에 다소 소홀했던 것으로 지적됐다.

 기금 운용에서 융자, 출자 등 모두 지원의 대부분이 게임·영화·애니메이션 등에 집중돼 기금의 융자나 출자시 회수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이 역시 문화산업의 각 분야에서 ‘부익부 빈익빈’현상을 가속시켜 결국 왜곡된 산업발전을 이루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반면 정작 자금이 필요한 캐릭터, 디지털 음악분야 등 영세분야의 자금줄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쏠림현상’은 기금 운용의 소구점인 ‘2008년 세계 5대 문화강국’ 실현의 씨앗돈으로서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어 보다 발전적 방향의 기금 운용이 요구되고 있다.

 문화관광부 문화산업정책과 조창회 과장은 “문화산업진흥기금의 경우 사업기금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융자기금으로 회수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으로, 기금운용에 대해 신중을 기하다보니 그런 결과가 초래됐다”며 “문화산업완성보증보험제 등 문화산업의 정책 뒷받침이 함께 이뤄져야 기금이 진정한 산업발전의 젖줄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우·유병수·이은용기자@전자신문, kwlee·bjorn·e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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