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반도체 르네상스는 오는가

 반도체산업에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

 9·11사태로 얼어붙었던 세계 IT경기가 서서히 풀리면서 수요도 늘고 가격도 오르고 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사업은 최고의 효자품목인 휴대폰의 기록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기대까지 나오고 있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는 식물인간처럼 수년간 채권단에 의해 연명돼 온 하이닉스반도체도 회생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 경기는 2009년까지 호조를 누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98년 IMF사태로 숨이 멎을 뻔한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가 맞고 있는 르네상스는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견딘 결과다. 그런 만큼 더욱 찬란한 꽃을 피워야 할 때다. 삼성전자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 최고의 메모리반도체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반도체분야의 최고봉 인텔도 따라잡을 수 있지 않겠나 하는 희망도 보인다. 하이닉스도 비록 외자이긴 하지만 매각문제가 성사될 단계고, 중국에 합작공장도 지으려고 한다. 동부아남반도체도 몰려드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이다. 머잖아 확실한 체질개선을 통해 세계적인 파운드리업체로 도약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하이닉스와 동부아남의 운명이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옛 영화를 능가하는 번영을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모처럼 맞은 르세상스가 빈사상태였던 이들의 부활과 재생으로 그쳐서만은 안된다. 유럽의 남단, 이탈리아의 한 귀퉁이에서 불기 시작했던 르네상스 바람이 유럽을 근대화한 거대한 ‘폭풍’이 되었듯이, 이번 기회에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또 다시 쓰디쓴 몰락을 겪지 않도록 반석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 황무지에서 꽃을 피운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은 지나친 메모리 일변도였기 때문이다. 대량생산만이 살 길인 메모리는 호·불황의 순환을 피할 수 없는 신세다. 따지고 보면 지금의 르네상스도 상승기류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중차대한 때에 비메모리 반도체의 싹이 돋고 줄기가 자라고 있다. 그동안은 불가능으로만 여겨져 왔던 일이다.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허송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동안 비메모리 씨앗을 잉태하고 출산했던 것이다.

 이제 비메모리가 하루빨리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도록 하는 일만 남았다.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대한민국 IT산업의 미래를 위해. 비모메리는 메모리의 안전판이기 이전에 한국IT산업 경쟁력의 원천이다. 한국이 자랑하는 휴대폰도, 디지털TV도, LCD도 더는 비메모리없이 경쟁력을 키울 수도, 유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비메모리에는 르네상스때와 같은 후원자가 없다. 르네상스는 메디치가와 같은 막강한 재력의 후원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화와 예술에 돈을 아끼지 않았던 이들 후원자 덕에 한낱 환쟁이가 명작을 그리는 예술가로, 일개 목수가 최고의 건축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지금 한국에는 파운드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삼성전자도, 하이닉스도 자기네 제품을 찍어내기에 바쁘다. 동부아남은 해외 큰손들의 납기 맞추기에도 급급하다. 인고의 세월 동안 어렵사리 싹을 틔운 국산 비메모리에 선뜻 파운드리를 내줄 곳 하나 없다. 장차 새로운 신화의 주인공이자 한국IT의 기둥이 될 비메모리업체들은 급기야 이름도 없는, 실력도 검증 안된 중국의 파운드리를 기웃거리는 신세가 되고 있다.

 이들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작품을 최고의 제품으로 찍어낼 수 있는 믿을 만한 파운드리를 제공하는 일이다. 비메모리가 차세대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하고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가장 확실한 후원은 바로 한국에 성능좋은 파운드리를 짓는 일이다.

 유성호부장@전자신문, sh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