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SEMTI의 영광과 한국의 과제

지난 14일 태국 방콕의 중앙청사에서는 이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우리로 치면 무역의 날 기념식과 비슷했다. 매년 무역의 날이면 수출유공자들과 기업들에 각종 훈포장을 수여하듯 태국에서도 이날 많은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다양한 상이 주어졌다. ‘프라임미니스터 어워드’로 명명된 이 행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전국에 생방송으로 방영될 만큼 전국적인 관심사였다. 태국 수상이 직접 시상하는 데다 일년에 단 한차례만 열려 권위도 매우 높은 듯했다.

 이날 행사의 스포트라이트는 단연 삼성전기 태국법인(SEMTI)에 맞춰졌다. 그 해의 최고기업에 주는 ‘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즉 최고기업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들의 취재경쟁도 그만큼 뜨거웠다.

 태국에서 최고기업상은 지난해 처음 만들어졌다고 한다. 국가기여도, 매출, 품질, 환경, 안전, 생산성 등 부문별 상을 3회 이상 수상한 기업 중에서 뽑는다고 한다. 첫 해엔 당연하겠지만 태국기업의 몫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올해에는 SEMTI가 최고기업의 영광을 안았다. 외투법인으로는 처음이다. 이날 수상 기업 명단에는 소니, 도요타, 산요 등 쟁쟁한 외투기업들이 포진돼 있었지만 아쉽게도 부문별 우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이들을 모두 제치고 당당히 태국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잡은 SEMTI가 여간 자랑스럽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의아하기까지 했다. 우수상 명단에서 보듯 태국 진출시기나 규모면에서 SEMTI를 능가하는 외국기업들도 상당수였다. 수도 방콕주변에만 100여개의 내로라하는 일본기업들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SEMTI가 태국에서 부문별 우수상을 3회 이상 수상했으며 오랜 사회봉사활동으로 매우 존경받는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태국의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한국에 삼성이 있다면 태국에는 SEMTI가 있다.” 가난하게 자랐다는 SEMTI의 여직원 한명은 “봉사활동을 통해 무한한 긍지와 삶의 보람을 찾았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해외에서까지 나눔의 문화로 영광은 안은 SEMTI에 대해 삼성그룹에서도 방송단을 파견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올해의 모토가 나눔의 경영인 삼성그룹엔 SEMTI가 자랑스러운 벤치마킹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떠들썩한 영광의 자리를 지키면서 왠지 모를 씁쓸함과 긴장감 또한 가시지 않았다. 그들의 시상식장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화기애애했다. 수상을 비롯한 각부 장관들이 대부분 참석했지만 이들로 인해 긴장감보다는 잔치분위기가 더 고조됐다. 시상도 상의 크기에 차별을 두지 않고 일일이 수상이 직접했다. 특히 시상식을 마친 수상은 50여 곳의 수상기업 부스를 일일이 돌며 오랫동안 그들과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고 칭송하는 성의를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외투기업과 내국기업간의 차별도 찾기 어려웠다. 최고기업이 한국의 SEMTI에 돌아갔고 부문별 우수상마저도 많은 외투기업들과 내국기업들이 나란히 차지했지만 그들은 전혀 어색해 하지 않았다.

 한국의 수많은 시상식장을 취재해 봤지만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한국에는 수많은 시상식이 열리지만 외투기업들에 돌아가는 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국기업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영 개운치 않다. 고위 공직자들의 딱딱한 자세와 상의 크기에 따라 수여자를 구분해야 하는 권위의식도 여전하다. 방송이나 사진 연출을 위한 형식적인 전시장 관람 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그날 태국정부와 국민은 대한민국의 한 작은 기업을 최고의 기업이라며 칭송하고 부러워했지만 정작 대한민국 국민인 나는 그들의 겸손함과 열린자세가 너무나 부러웠다. 동남아의 새로운 맹주를 꿈꾸면서도 소리없이 부드럽고 조용하게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그들의 환경과 흡인력이 두렵기까지 했다.

 <유성호 디지털산업부 부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