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길에 오른 김 과장은 얼마전 새로 구입한 모바일뱅킹용 휴대폰으로 요금을 낸뒤 공항버스에 올라탄다. 아직은 생소한 광경인지 승객들의 시선이 쏠린다. 멋적음도 잠시, 김 과장은 바쁜 일정에 쫓기느라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생각난다. 오늘은 보유주식을 처분할지 결정하려 했지만 깜빡 잊었다. 신용카드 대금 납입 마감일도 오늘인데 바쁜 일정에 쫓기느라 은행에 들릴 시간이 없었다. 때마침 모바일뱅킹용 단말기가 해결사 노릇을 할지 모른다. 얼른 휴대폰으로 증권 사이트에 접속해 다수 하락세가 주춤해진 주가를 확인하고서야 안심한다. 모바일뱅킹을 통해 신용카드 대금을 즉시 이체한다. 또 하나 생각난 김에 금융포털 사이트에 접속한뒤 1만원짜리 저렴한 여행자보험에도 가입한다. 오늘 김 과장에겐 ‘휴대폰 하나로 경제생활’을 톡톡히 실감한 하루다.
이동전화와 금융서비스가 접목된 이른바 ‘금융·통신 융합(일명 컨버전스) 시대’가 성큼 다가서고 있다.
모바일 금융서비스는 지난 2001년 SK텔레콤·KTF가 신용카드를 휴대폰 내장형 칩에 접목한 모바일결제 서비스를 선보이며 세계 첫 금융·통신 컨버전스 사례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신용카드 대란과 낮은 사용자 인식도 탓에 지금까지는 지금까지 보급률·이용률이 극히 저조한 모습을 보여 왔다.
올 들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대전과 맞물려 보편적인 대국민 서비스망인 은행 영업점이 이동전화 고객 유치 채널로 급부상, 지난 3월부터 줄줄이 선보인 모바일뱅킹 서비스는 마침내 미래 금융·통신 융합환경의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특히 이동전화 3사가 최근 신용카드 가맹점에 속속 도입되고 있는 적외선(IR) 지불결제 단말기 호환에 합의, 준비작업을 서두르고 있어 금융·통신 융합은 온·오프라인 환경을 넘나드는 보편적인 생활 환경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최근 선보이는 이통 3사의 모바일뱅키 서비스는 예전 무선인터넷(WAP) 기반의 모바일뱅킹 서비스나 모네타·K머스 등 모바일 신용카드 서비스와 확연히 다르다.
무엇보다 칩카드 내장형 단말기를 대대적으로 보급함으로써, 금융거래의 안전성·편리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점이다. 덕분에 최근의 칩카드 기반의 모바일뱅킹 서비스는 초창기 서비스가 제한된 기능과 낮은 사용자 인식도 탓에 보급에 크게 애를 먹었던 것과 달리 출시 초기부터 높은 실이용율을 자랑하고 있다.
실제로 KTF는 지난 한달간 자사 K뱅크 가입자 가운데 교통카드나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한번이라도 쓴 비율이 50%에 육박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미 휴대폰을 플라스틱 교통카드 대신 쓰거나, 인터넷·전화 대신 은행거래 용도로 활용하는 가입자가 많다는 뜻이다.
적외선(IR) 수신기를 통해 휴대폰으로 자동화기기(CD/ATM)에 현금을 인출한 비중도 전 가입자의 20% 선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칩카드 기반의 모바일 금융서비스는 기능성도 이전보다 한층 다채롭다. 대용량 칩카드를 내장함으로써 기본적인 은행거래외에, 향후 증권·보험 등 무선 금융포털로 확장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교통카드 기능도 구현했다.
이로 인해 예상되는 단적인 변화는 휴대폰이 각종 금융거래 서비스를 수렴하는 이른바 금융 ‘컨버전스 현상’이다.
휴대의 편리함 덕분에 신용카드 가맹점이나 교통카드 같은 오프라인 금융거래 채널은 물론, 인터넷 전자상거래(EC)도 휴대폰에 담아낸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통신 컨버전스는 산업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휴대폰을 신규 부가가치 상품의 유통 채널로 활용할 수 있어 이동전화사업자들이 관심을 쏟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가 선도한 금융·통신 컨버전스 사업을 해외로 진출시키려는 노력도 가시화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중국 현지 금융기관들이 추진중인 신용카드 가맹점 구형 단말기 교체 움직임에 자사의 모네타 시스템을 수출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국내 모바일뱅킹 서비스가 가까운 시일내에 대중화에 성공하면 칩카드와 동글(수신기), 관련 시스템 등을 일괄 수출하는 길까지도 열리는 것이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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