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을 둘러 보면 과거에 비해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광고에서도 외국인들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으며 식당이나 중소기업엔 많은 중국 동포들과 해외 인력들이 종사하고 있다. 특히 IT 분야는 인도에서 온 전문가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우리도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세계인들과 더불어 사는 다양한 사회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에서는 여성임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여성들의 국회 진출도 활발하다. 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정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등 사회가 다양하고 건강하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우리나라도 세계 다양한 소비계층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데 힘쓰고 있다.
흔히 동종 교배는 열성이 되고 이종 교배에서 강한 종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학연, 지연, 혈연 등의 끈에 묶인 일종의 동종 교배 사회여서인지 다양성을 받아 들이지 못한 채 여전히 배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끈’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은 단지 자기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적일 뿐 그 사람과 상생(win-win)하려는 철학이 없다. 남의 주장은 철저히 배제하고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폐쇄적인 문화구조는 사회 발전을 더디게 할 뿐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여서 민간의 경험과 지식을 도외시한 정책으로 과연 2만달러 시대를 열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시장의 장벽이 없어지면서 상품의 생산·판매·서비스가 한 나라 내에서 수직·독점적으로 제공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FTA 체결로 하나의 시장이 된 우리나라와 칠레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시장에서 공산품은 한국이, 몇몇 농산품은 칠레가 우위를 확보할 것이다. 즉, 두 개가 하나의 시장이 되면 상품의 공급은 경쟁력이 강한 쪽으로 옮겨가게 돼 있다. 소비자들의 관심은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것이냐보다도 누가 만든 것이냐에 더 쏠려 있다.
21세기의 시장은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시장이다.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해지므로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 결국 후진국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위험성도 안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국가가 내부적으로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상품 경쟁력이 제자리 걸음을 하는 것도 시장의 세계화 흐름을 내부적으로 받아 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의 아태본부가 일본에 없는 것은 일본의 ‘다양성’에 대한 거부감 탓도 있다. 사실 세계화라는 것은 어느 한편으로는 미국이 현재의 경쟁력과 세계적 리더십을 21세기에도 유지하기 위해 내부에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무기로 한 전략이다. 이 같은 흐름을 볼 때 우리도 ‘다양성의 토양’을 서둘러 배양하지 못하면 21세기 무한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이는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갈등도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 나고 있는 분쟁, 소용돌이도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HP 같은 회사는 일찍이 다양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내 문화인 ‘HP Way’에 명문화해 놓았다. 즉, ‘인간은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좋은 일, 창조적인 일을 하기 원하며 이렇게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면 누구나 그렇게 일 할 것이다’ 라고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회사 경영진만을 보더라도 회장은 여성이며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프린터 사업 부문은 인도 출신이, 시스템 사업은 영국 출신이 이끌고 있다. 21세기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혼자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양성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배양해야 한다. 강하고 힘 센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가장 적응을 잘 하는 종이 살아남는 것이다.
<최준근 한국HP 대표이사 joon-keun.choi@h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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