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신흥 유흥가로 부상한 연산동에 위치한 한창정보타운의 오후 7시는 활기가 빠져있다. 주변의 음식점과 술집들은 ‘정보타운로’라는 거리명칭을 무색하게 한다. 유흥가가 활기를 되찾는 시간이어서 이들의 네온사인 불빛을 반사하는 “10년 전통의 컴퓨터상가”라는 플래카드는 을씨년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폐장 1시간 전인데도 벌써 셔터를 내린 매장도 눈에 띤다. “IMF 때보다 더 나쁘다”는 A사장의 말은 상가의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해준다. 지난 98년 한창정보타운에 입주한 그는 “가게를 접을 마음을 먹은 지 오래됐다”며 같은 생각을 하는 상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하교시간인 6시경. 동의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가야컴퓨터상가 주차장은 차로 빼곡하다. 자동차들도 연신 드나들고 차에서 물건을 옮기는 사람들도 많지만 매장에 들어서면 손님은 별로 없어 보인다. 가물에 콩나듯 들어온 학생들도 가격만 물어보고 가기 일쑤다.
가야컴퓨터상가상우회 조기현 회장은 “인터넷 때문인지 상가까지 와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회원사들이 모여 논의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때 부산에는 한창정보타운·부산컴퓨터도매상가·가야컴퓨터상가 등 ‘빅3’를 비롯해 마트월드·중앙컴퓨터상가·벡스코몰 등 모두 9개의 집단상가가 형성돼 있었다. 이들 상가는 적게는 30개 안팎의 매장을 갖는 소형 상가에서부터 150개 매장 규모의 대형 상가로 구성돼 있다. 컴퓨터시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90년대 후반에는 이들 상가의 매장 수가 1000개를 넘어선 적도 있었다.
최근 보인 경기침체는 소비자들의 구매력 감소와 상가간 경쟁심화, 특히 인터넷과 홈쇼핑의 등장으로 전자상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과거에 비해 세는 위축됐지만 부산컴퓨터가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150여개 매장이 있던 가야컴퓨터와 한창정보타운이 각각 100여개 60여개로 감소했다. ‘빅3’가 이 정도인 만큼 마이너들의 타격은 더 컸다. 부전동에 위치한 율곡컴퓨터상가와 해운대 벡스코몰은 매장수가 크게 줄었고 가야컴퓨터상가와 인접한 인포컴퓨터상가는 문을 닫았다.
◇명
전자유통상가들은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돌파구를 찾아 나서고 있다.
한창정보타운 3층에는 찜질방이 입주했다. 극장 등 복합시설로 거듭나 성공을 거두고 있는 수도권의 전자상가들을 벤치마킹한 결과다. 찜질방을 활용해 유동인구를 늘리고 이를 구매로 연결시키겠다는 것이다. 상우회 관계자는 “상가가 시장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며 “손님 유인효과를 겨냥했다”고 말한다.
조기현 회장은 맞대응도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진을 줄이더라도 인터넷과 홈쇼핑 판매에 주력하겠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부산 전지역을 상권으로 한 포괄적 전략에서 탈피, 특정 지역 상권을 타겟으로 삼아 마케팅 활동을 집중하는 전략을 채택하는 상가들도 늘고 있다. 벡스코몰에서 컴퓨터 상점을 운영하는 K사장은 “신도시가 가까워 가전제품의 경우 소형보다 대형·고가화된 제품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부산지역 전자유통은 지역상권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주변에 들어선 대형 할인점 때문에 매출에 타격을 입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전시회 주제에 따라 가게 앞쪽에 놓는 상품들을 다르게 하고 있다”며 가능한 한 모든 환경을 활용해 최대한의 마케팅 효과를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같은 최근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가야컴퓨터상가의 유림정보시스템 허귀갑 사장은 “소비자들의 욕구변화에 맞춰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고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노력이 더욱더 필요해졌다”고 덧붙인다.
남들과 똑같아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어찌 보면 평범한 사업방침이 부산의 전자제품 유통상가들에게 있어서는 생존의 열쇠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포기하지 않는 한 부산유통상가엔 아직 희망이 있다.
<부산=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
많이 본 뉴스
-
1
삼성전자, 4000억 온누리상품권 푼다…5조 사회 기여 '시동'
-
2
엔비디아, 韓 R&D 센터 짓는다…젠슨 황 “이미 인력 채용 중”
-
3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결국 '과반' 지위 잃어…2·3 노조는 세불리기
-
4
이통사, 통합요금제 맞춰 온라인 요금제 20~50% 줄인다
-
5
단독애플페이 교통카드 충전에 '카카오페이' 추가된다
-
6
앤트로픽, AI 에이전트 보안 백서 공개… “제로트러스트 적용해야”
-
7
中 지커 “한국서 올해 7X 2000대 판매 목표”
-
8
월급쟁이부자들, 삼성전자 출신 김상효 CTO 영입
-
9
젠슨 황, 최태원-구광모-이해진 총수와 홍대서 '삼소' 회동
-
10
[컴퓨텍스 2026]대만에서도 빛난 'K-반도체 열풍'
브랜드 뉴스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