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사회 초년병 시절인 스물 일곱 젊은 나이에 선친의 대표 자리를 맡은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된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여곡절도 많았고 고비 고비 힘들었던 당시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10년 전 세상을 달리한 선친께선 처음 전구 사업에 손을 대셨다가 76년 남영실업상사란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한 것이 지금 위디츠의 모태다. 선친은 78년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불씨를 당겼던 삼성전자의 1호 대리점으로 출발, 15년이란 세월을 ‘돌덩어리(반도체 속칭)’와 함께 사셨다. 그렇게 인생을 열정적으로 사셨던 분이 회사가 안정 궤도에 진입한 93년 봄 췌장암 판정 후 3개월 만에 세상을 등지셨다.
그제서야 2년 전 대학 졸업 후 ‘유학이냐, 기업체 취업이냐’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한참 갈등하던 나를 부르시던 선친의 뜻을 깨닫게 돼 사명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꼈다. 선친께서는 “어차피 회사 경영을 이어갈 거라면 일찍 들어와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것이 낫다”고 하셨던 것이다.
처음엔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이를 함부로 거역할 수도 없고 한편으론 그게 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젊은 날의 이상을 잠시 접고 삼성광전(위디츠 전신)에 첫발을 내디뎠다.
결과적으로 당시 부친의 권유와 젊은 시절의 나의 결단이 옳았다. 선친이 돌아가시기 전 2년 동안 나는 영업과 관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직원과 부딪치며 가진 유대감은 그 어떤 것 보다도 소중한 무형의 자산이었다.
젊은 나이에 사장 자리에 올라보니 모든 게 생소하고 겁도 났다.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장이라지만 겨우 사회 생활 2년생에 불과했고 대학 때 경영학 수업을 들은 것밖에 없던 내게 단시간내에 모든 것을 배우고 적응해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다. 주변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려왔다. 특히 반도체를 공급해주던 삼성은 당시 매출 100억원 대의 회사를 어떻게 젊은 사람이 맡을 수 있을지 영 불안해 했다.
인정받고 싶었다. 아니 인정받아야만 했다. 주변의 불신을 잠재우지 못하면 선친이 일으킨 회사의 위상을 무너뜨리는 꼴이 된다는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그러던 중 정작 내게 힘이 된 사람은 내가 상사로 모시던 분과 동료들이었다.
어수선한 상황이 오히려 직원들의 힘을 하나로 뭉치게 해준 것이다. 늦은 밤 회사 근처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저희가 손과 발이 돼 열심히 뛰겠습니다, 다함께 반도체로 국내 최고의 회사를 만들어 보십시다”라던 직원들의 다짐이 아직도 생생하다. “반도체 몇 개 팔아 얼마나 이익을 남길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새내기 사원이 회사의 경영 전략을 짜는 새로운 임무를 맡은 것이다. peter@withi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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