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공익광고에서 본 문장 둘이다.
1. 선생님: “(방긋 웃으면서) 철수야 방가 방가∼.”
철수: “(인사를 하며) 샌님 할룽∼.”
2.“쌤 안냐세여? 꾸벅 ∼m(-_-)m m(_ _)m.”
만약 이런 글들이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실린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렇지않아도 속도경쟁의 세상 속에서 자꾸만 밀려나는 듯한 초조감이 온 몸을 짓누르고 말 것 같다. 이 정도면 그래도 어렴풋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다. “너 네하고 놀기 싫어”를 “너누-I Iㅎr그 놀긔ㅅ1러”로 표기하는 단계쯤 가면 눈앞이 캄캄하다.
얼마전 문화부가 제작한 ‘우리글 우리말 바로쓰기 캠페인’에 등장하는 한 중학생의 실제 작문에서 우리의 현주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칭구생일’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작문은 첫 페이지부터 틀리거나 알아볼 수 없는 글씨들로 꽉 찼다. 인터넷 언어에서 파생된 잘못된 줄임말, 은어, 외래어 등 낫 놓고 ‘ㄱ’자를 찾아도 이해하기 힘든 표현들이 많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어떤 이들은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시대적 변화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짧은 시간 내 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해선 ‘줄임말’이 좋은 수단일 수 있다. 서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다면 줄임말은 경제적인 의사소통의 한 방법일 것이다. PC통신 시절에는 자판을 한 번 두드리는 것도 돈으로 계산됐기 때문에 시간과 돈, 노력을 절약하는 방법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어솨요’(어서 오세요), ‘리하이’(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 또한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요즘에는 말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체불명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글애서(그래서)’ ‘자쥬(자주)’ ‘∼어여(∼어요)’ ‘∼꼬얌(∼거야)’와 같은 병신체가 온라인 통용어로 난무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羅 ⓡⓖ孝(나 알지요)’처럼 영어, 한자 등 각종 외래어에 숫자나 도형까지 조합한 기형적인 표현(외계어)들이 생성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정액제)의 보급이 크게 확대되면서 PC통신할 때처럼 사용시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자 이제는 자신의 글자를 꾸며 튀어보려는 청소년들이 많아진 탓이다.
휴대폰을 통한 대화에서는 이러한 언어파괴가 더욱 심화될 조짐이다. 입력할 수 있는 데이터량의 한계가 또다른 축약 언어나 표현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휴대폰으로 오가는 문자메시지에는 정상적인 한글 표기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이 한글을 난도질하고 있는데도 우리의 감각은 무디기만 하다. 당장 쓰기가 쉽고 재미있다고 해서 초등학생들이 지금처럼 외계어, 병신체 등에 물들여 진다면 우리말의 설 땅은 예측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인터넷 통신어를 무조건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온라인 통신어는 좋든 싫든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통신어 번역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이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펼치고 있는 병신체, 외계어 등의 퇴치운동을 확산시키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 근본적인 처방으로 초중고 교과과정에 별도의 통신어를 개설해 국어와 철저히 차별화하는 교육을 진지하게 검토해야할 때이다.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으로 인터넷 문화를 재정립하는 것은 557돌을 맞는 한글날 우리에게 안겨진 책무다.
◆이윤재 논설위원 yj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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