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유통시장 역수입 제품 다시 `고개`

 ‘디지털 카메라를 생산하는 E사는 최근 부품 조달과 관련해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하이닉스반도체가 생산하는 메모리 제품을 시중가보다 무려 10% 가까이 싸게 팔겠다는 것이다. 수입 업체라고 밝힌 이 회사는 홍콩 수입품 일 뿐 시중에 유통되는 하이닉스 제품과 똑같다며 필요하다면 다른 부품도 구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 유통시장에 ‘역수입’ 제품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90년대 후반 기승을 부렸던 역수입 제품은 점차 가격 경쟁력을 잃어 가면서 자취를 감추는 듯 했으나 일부 품귀 제품을 중심으로 물밑에서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이전에 주류를 이뤘던 가전 등 세트 제품의 유입은 주춤한 데 반해 전자 부품·반도체·주변기기 등은 소량이지만 여전히 용산 등 전자 단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이들 역수입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사이트나 기업들이 버젓이 등장해 보다 싼 값에 부품 구매를 원하는 조립 PC업체나 중소 제조업체를 유혹하고 있다.

 역수입 제품은 불법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가격 질서를 흐리고 이상이 발생하면 제조사를 통해 정상적인 사후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가장 거래가 활발한 제품은 상대적으로 고가인 플래시 메모리와 시스템 LSI, 쉽게 현금으로 전환이 가능한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CPU),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광저장장치(ODD) 등이다.

 올 초부터 품귀 현상이 계속되고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는 시장의 유통 재고 물량이 바닥나고 가격이 치솟으면서 홍콩 등 아시아 메모리 유통 시장을 통해 역수입되고 있다.

 심지어 몇몇 제조업체는 아예 완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플래시 메모리 유통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 프로세서 역시 ‘그레이 마켓’이라는 별도 시장이 형성될 정도로 역수입 제품의 유입이 일반화된 상황이다. 인텔 내부에서도 별다른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아 국내 그레이 마켓의 규모는 아직은 미비이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삼테크의 반도체 유통 관계자는 “주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메모리를 중심으로 홍콩에서 수입되는 제품이 가장 많다”면서 “가격 질서뿐 아니라 불량 문제, 심지어 선금을 받고 물건을 공급하지 않는 사례까지 빈번해 주의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LG전자와 삼성전자가 공급하는 국산 ODD도 역수입되는 추세가 연초에 비해 다소 꺾였지만 여전히 용산 등지에서 부분적으로 유통되는 상황이다.

 ODD는 지난 3월 LG전자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52배속 CDRW가 저가로 대량 유입되면서 한때 정품과 역수입 제품의 가격 차가 최고 2배 가까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한때 전체 유통 시장에서 20%까지 비중을 차지했다.

 컴오즈의 정세회이사는 “지난 6월 한때 ODD의 경우 정품과 역수입품의 가격 차가 2배까지 벌어지자 역수입품이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으나 이달 들어서 점차 시장에서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며 “D램 모듈이나 ODD 등은 해외 현물 시장과 국내 유통 시장의 가격차가 벌어지면 유입량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통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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