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사에서 보도화하지 말라고 합니다. 취재한 내용을 없던 일로 했으면 하는 데….” 대기업 부품소재 협력업체인 A사 관계자로부터 아침 일찍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골자는 이렇다. A사가 기술력을 널리 홍보할 목적으로 취재에 선뜻 응했는 데 X사 담당자가 10월에 직접 발표할테니 이를 공개하지 말라고 뒤늦게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협력업체 입장에선 납품처의 명을 어기기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다.
대기업들은 이처럼 신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협력사의 입을 철저히 막고 있다. 게다가 보도자료에는 협력사들이 완전히 빠진 채 알파에서부터 오메가까지 모두 자사가 독자 개발했다는 식이다. 협력사가 보도자료를 작성할라 치면 내용검열도 서슴치 않는다.
더러는 공동 개발한 시제품을 한껏 홍보해 놓고선 정작 상품화 단계에 들어가면 외국 업체로 파트너를 변경, 협력사를 당혹케 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 중소 업체인 B사 사장은 “1년 넘게 Y사 생산 라인에 직원들이 상주하다시피하면서 공동으로 반도체 관련 부품을 개발했는데 한 동안 소식이 없어 양산 일정을 물었더니 ‘일본 업체로 바꿨다’는 통보만 받았다”며 분개했다.
X, Y사는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굴지의 기업들이다. 한마디로 중소 협력 업체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봉(?)인 셈이다. 물론 대외비 성격의 자료가 협력 업체에서 외부로 유출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대기업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또 개발 초기인 만큼 중소 업체 기술력이 외산 업체에 일정 부분 뒤쳐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상당수 대기업들은 중소 업체의 기술 개선 노력에 지원을 해주기는 커녕 일방적으로 거래관계를 끊는 등 횡포를 부리고 있다.
글로벌 경쟁에선 독불장군이란 존재할 수 없다. 우수한 협력업체는 대기업의 제품및 기술 경쟁력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대기업이 중소 업체를 진정한 동반자로 여기는 문화가 하루빨리 정착됐으면 한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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