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이공계 학생 지원 격감 추세를 막는 고육책으로 정부는 최근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는 젊은 세대들의 즉물적 에고이즘과 전통적 관료제일주의 냄새가 물씬나는 실망스런 정책일 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술고시라는 용어를 없애고 일반행정고시로 통합, 5급 이하 공직의 절반 가량을 이공계가 차지하도록 해준다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승진 후 고위직 진출시 ‘기술고시 출신’이란 꼬리표를 없애준다는 내용도 성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기술고시가 행정고시에 비해 하격(下格)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어서 당혹감을 금할 수 없다.
물론 이공계 지원자가 줄고 있는 현실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이것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이공계 안에서도 소위 인기학과 위주로 지원생이 몰리고 있는 것은 시대적 추세라 해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비인기학과 분야의 인력 수급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8월 14일(현지시각) 발생한 미주 동북부의 대규모 정전사태는 5000만 인구를 암흑으로 몰아넣었는데 송배전시스템에 대한 적은 투자와 전통 전기 기술자들의 실수가 사고 원인인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지난 60∼70년대에 인기가 있던 전기공학이 점차 시들해지면서 2000년대에 와서는 전자·컴퓨터공학 등 정보기술 계통 학과에 완전히 역전당하고 있는 현상은 이젠 자연스러울 정도다. 이에 따라 일할 사람이 없다는 소리가 전기업계의 설계, 생산 등 각 분야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국가 인프라의 주요 핵심이 발전, 송전, 배전설비이고 기타 산업시스템의 가동 원천이 전기·전력인데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정부는 ‘차세대 신기술 개발’에만 시선이 꽂혀있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전통기술의 핵심인 전기공학이 전자공학이나 다른 IT 관련 인기학과에 맞서 기본인력을 유지하고 배출할 수 있단 말인가. 설사 입학했다 해도 부전공 또는 전과 등을 통해 전공을 바꾸어 가는 예가 허다하다고 한다.
새로운 차세대 기술에 대해 국가가 앞장서 개발 계획을 세우고 정부 예산을 몰아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차세대 신기술의 대부분이 전통산업 인프라에 접목하거나 소위 굴뚝 제품의 기능을 보완해 겸용하는 소프트웨어적인 것이다. 따라서 ‘전통기술의 완벽한 제품화’에도 많은 개발비가 투자돼야 마땅하다.
특히 중전기분야의 대다수 산전기기 제작 기술은 일본, 미국, 유럽 등으로부터 도입돼 국산화된지 30년이 넘은 것들이다. 하지만 원천 기술을 가진 국가의 제품과 비교해보면 아직도 상당부문 품질이 떨어진다. 이는 설계 기술은 있으나 자재를 선택해 생산·검사하는 ‘노하우’는 완전 이전돼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이전받은 세부 기술자료를 적당히 무시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통 전기기술은 많은 시간과 개발비를 요한다. 즉 다년간의 생산 노하우를 동반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통산업은 이미 다 알고있고 한물간 기술이라고 생각해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정부 역시 당장 그럴듯해 보이는 ‘차세대 기술’에만 목을 맨다. 앞으로 차세대 신기술 개발 항목에 ‘전통기술의 생산 노하우’도 포함시키는 지혜가 절대 필요하다. 생산 노하우야 말로 국가 경제를 탄탄히 하는 원조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앞으로 이런 노하우가 효자 신기술로 각광받도록 산업정책을 바꿔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을 전공하는 이공계의 시대적 사명감과 자존심을 장기적 안목에서 훼손하는 일시적인 회유정책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다소 시일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그래야만 이공계의 보편적 가치를 뛰어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공계 진출의 증가를 목표로 한 정부의 공직자 확대책에 대한 긍정적 파급 효과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술과 노하우의 완벽한 조화를 위한 신기술 교향곡의 연주가 우리 산업인들의 몫이라면 작곡과 지휘는 언제나 국가의 책임이다. 정부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다.
◆김준철 한국전기산업진흥회장 iecpm@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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