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장수CEO의 길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안경수 한국후지쯔 사장이 본사 등재임원(경영집행역)으로 발탁된 것은 개인의 영예를 넘어서 한국 IT시장 전체에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한국인도 유능한 경영자의 자질을 인정받아 외국계 IT기업 본사 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기자는 이 소식을 접하면서 느낀 기쁨도 잠깐, 국내 외국계 IT업체의 현실을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국내에서 지사장으로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도 본사에서 인정받는 유능한 CEO가 어느 정도나 될까 헤아리니 손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IBM을 시작으로 외국계 IT업체가 국내에 진출한 지 35년이 넘은 마당에 오랜 기간 자리를 지킨 장수 CEO가 대여섯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 강병제 전 한국오라클 회장이 10년이라는 최장수 지사장으로 유일하게 기록됐으며 그 뒤로 정형문 사장(한국EMC)·신재철 사장(한국IBM)·안경수 사장(한국후지쯔)·최준근 사장(한국HP) 등 ‘4인방’이 7년 남짓 지사장을 맡으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공교롭게 지난 4월 정형문 사장이 퇴임의사를 밝혀 이제는 그나마 2명만이 현직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을 빼고 나면 여전히 대부분의 지사는 3년도 채 넘기지 못하는 단임 지사장 문화가 지배적이다. 3년은 지사장이 나름대로 그림을 그려 뜻을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게다가 지사장 교체과정에서 ‘영업실적 부진’이나 ‘본사와 마찰’에 대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물론 본사의 과도한 통제정책이 문제가 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지사장의 커뮤니케이션과 조율능력에 해당한다. 본사 입장에서는 한국지사에 대한 평가를 지사장을 통해 할 수밖에 없으며 지사장은 한국지사의 권한강화와 축소를 좌우하는 키맨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IT산업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이제 보편화되고 있다. IT산업의 종주국 미국의 유명 기업이라해도 한국의 지사장을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정도로 우리의 위상은 커졌다. 그저 본사에서 떨어진 매출 할당량이나 채우고 적당히 본사의 정책을 집행해 다른 좋은 자리로 옮겨가겠다는 생각으로 지사장을 맡고 있다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한국시장에 뿌리를 내리고, 한국고객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사 직원들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장수 CEO로 가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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