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이제는 능동적 개방이다

◆조환익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hecho@kotef.or.kr

 

 이만큼 수출을 많이 하고 외국과의 경제교류를 많이 하는 나라치고, 한국처럼 외국인들이 그 나라 정서와 의식에 동화되기 어려운 나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한국인들과 어울려 일도 하고 친교도 하지만, 대부분의 생활 동선은 그들만의 서클 속에서 움직인다.

 예를 들면 일본 기업인이나 주재원들은 동부이촌동에 몰려 살고 프랑스인들은 반포의 범위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나 외국인들은 타운을 형성해 살고 싶어 하지만 우리나라는 특히 외국인들이 흩어져서 개별적으로 사는 데 불편한 점이 많다. 우리나라 최고 백화점의 슈퍼마켓에 영어로 된 가격표 하나 볼 수 없고, 외국인 학생들은 국내 학교에 들어갈 생각도 못한다. 대학의 외국인 학생 비율도 아시아에서도 바닥권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제도적으로나 또는 국민들이 유별나게 외국인을 배척하는 것도 별로 없다. 오히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개방을 확대해왔고 지표상의 대외 개방 정도는 세계 최선두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다’ ‘몇년을 있어도 이방인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까지의 개방이 내부여건이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서 피동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자동차 수입을 자유화하더라도 외제차를 타면 조사라도 받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고, 외국 기업을 유치하면서도 외국인들이 국내 백화점 카드 하나 발급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80년대 후반 이후부터 상품시장·자본시장 등에서 본격적인 개방이 시작되었지만 우리가 스스로 빗장을 열었다기보다는, 미국의 통상법이나 유럽의 으름장속에서 이뤄진 점이 크다. 그리고 끝까지 남았던 몇가지 빗장도 IMF 외환위기 때 신탁통치 과정에서 반강제로 벗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일본으로부터만 수입을 금지하는 제도인 수입선 다변화 제도도 없어졌지만, 아마 그렇지 않았으면 국민정서란 이유로 아직까지도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개방만이 살 길이다’라고 멀쩡히 외치다가도, 대원군 척화비 앞에서는 만세를 부르는 정서를 갖고 있는 우리다. ‘자유무역협정이 세계에 200여개나 체결되어 있는데 우리는 한건의 협정도 체결하지 못했다’고 행정부를 질타하던 개방의 전사같던 정치인들이 막상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 비준을 앞두고는 과반수가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동북아 경제 중심이 되고자 정부 한쪽에서는 매력있는 외국인 투자조건을 찾아보려 부심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불법파업이라도 요구내용이 정당하면 좋다’는 식의 외국 기업인들이 기겁을 하고 도망갈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는 나라다.

 대통령 취임 후 100일이 지나고 정부가 민생과 경제 살리기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수출하지 않고 외국인투자가 계속 이어지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는 것이 우리경제다. 그러려면 다시 개방을 화두로 올려야 한다.

 특히 이제는 과거와 같이 피동적인 개방이 아니고 우리사회 각 부문을 실질적으로 여는 자율적이고 실용적인 개방전략을 세워야 할 때다. 또 총론은 개방을 지지하지만 각론에 들어가서는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을 조정하는 시스템도 확고히 서야 한다.

 여기에서 대외지향적인 강력한 통치력이 필요한 것이다. 다행히 그간 방미나 방일 활동을 통해 보인 대통령의 대외노선은 예상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실용적인 것 같다. 우선 국내에 주재하는 외국기업들을 만나서 쏟아져 나오는 그들의 걱정과 불만을 듣고 이를 성심성의껏 해결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차제에 무슨 특별위원회라도 하나 만들어서 개방시스템을 다시 짜는 노력을 해야지만 진정한 동북아 허브를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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