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정보문화를 만들자](13)발달장애우 정보화현장

 컴퓨터에 관심조차 없었던 발달장애(자폐증)인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 실제 나이에 비해 정신연령이 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보화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정보화 연령’은 그리 낮지 않다. 믿음복지회 한 구석에 마련된 컴퓨터를 먼저 차지하겠다고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은 사회와의 대화통로를 찾았다.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 사회복지법인 믿음복지회(이사장 전가화 http://www.faithwelfare.org)는 발달장애인의 재활·자립과 사회통합을 지원하는 발달장애인 종합복지지원센터다.



 흔히 자폐증 환자로 불리는 발달장애인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일상적으로 되풀이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생활방식을 바꾸려하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다. 또 자신이 정해놓은 방식에 맞지 않으면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자해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발달장애의 80% 이상은 정신지체를 동반하고 뇌성마비·간질·언어장애·주의력결핍 등을 동반하는 중복장애가 대부분이다.

 이런 발달장애인에게 정보화 교육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발달장애인의 인내심은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 5분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기에 예상치 못한 괴성과 폭력, 자해 등 돌출행동까지….

 특히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기보다는 무관심이 앞서는 이들에게 정보화 교육은 멀고 험한 여정이다.

 하지만 믿음복지회가 지난 6개월 동안 진행한 정보화 교육 이후 믿음복지회에는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사들은 발달장애인의 달라진 행동에 크게 놀랐다.

 의사표현이라곤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이들의 변화는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라는 게 사회복지사들의 설명이다. 물론 발달장애인의 이같은 변화에는 인내심과 집중력은 부족하지만 남다른 집착을 보이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간파한 사회복지사들의 전략이 주효했다.

 즉 음악을 남달리 좋아하는 장애인에게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했고 영화 마니아에게는 인터넷을 통해 영화 관람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식의 정보화 교육을 통해 취미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폐쇄적인 자기만의 세계에 함몰된 채 살아 온 발달장애인들은 정보화 교육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의 정보화 수준은 일반인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아직은 가장 초보적인 단계라 할 수 있는 문서작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장족의 발전이다. 발달장애인 스스로 열린 세상에 발을 들였다는 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믿음복지회 관계자는 “정보화 교육을 시작하고 3개월 동안은 관심을 갖지 않아 크게 고민했는데 요즘은 컴퓨터를 서로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막 정보화의 꿀맛을 본 발달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복지사들의 아쉬움도 적지는 않다.

 믿음복지회는 현재 부족한 예산과 인력 탓에 자체 정보화 교육은 엄두를 못내고 있다. 구청을 비롯한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무료 정보화 교육을 전전하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송파구 청소년 수련원의 정보화 교육장을 일주일에 한번씩 찾아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믿음복지회측은 “이제 막 컴퓨터에 재미를 붙이는 시기인데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깝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실제로 발달장애인의 정보화 실태에 대한 정확한 조사가 이뤄지고 그에 합당한 현실적 지원방안이 마련됐다면 이같은 아쉬움을 떨칠 수 있겠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0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추정수는 인구 1만명당 3∼5명으로 조사됐다. 또 서울대 소아정신과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발달장애 발병률이 인구 1만명당 약 4명으로 서울시 발달장애 인구는 약 4000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인식부족으로 인해 지난 2002년 6월 기준 발달장애인 등록현황을 보면 서울시에 809명만이 장애인 등록을 한 상태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인 발달장애인 대상인구 파악조차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발달장애인은 여러 측면에서 일반인과 다르다. 또 발달장애인의 특성은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할 때 발달장애인의 정보화 교육은 일반 정보화 교육과 분명히 다르다. 결국 일률적인 정보화 교육 프로그램 적용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일반인들의 발달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떨치는 일이다. 믿음복지회가 온갖 편견과 오해를 무릅쓰고 발달장애인과 함께 공공기관을 찾는 것도 정보화 교육이라는 본래 목적 이외에 사회성이 일반인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발달장애인의 공공시설 이용기회를 늘려 사회성을 키우려는 목적도 있다.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정보화 교육이 어려운 이유 중에는 교육을 진행하는 강사가 웬만한 인내력과 이해심을 갖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교육진행이 어렵다는 점도 있다. 정보화 교육 때 맨투맨(man to man)으로 발달장애인을 도와 줄 정보화 자원봉사가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믿음복지회는 정보화 촉진이니 정보화 교육이니 하는 거창한 구호보다 이미 만들어진 컴퓨터 교육 시설을 발달장애인에게 활짝 열어 줄 수 있는 실천 가능한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발달장애인도 사회를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인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복지회의 한 관계자는 “장애인이라는 시각을 버리고 이들이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든든한 지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동정적인 지원보다는 같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지원만 따라준다면 이들이 사회에 어울려 지내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정보통신 대국이라는 화려한 잔치에 함께 하지 못한 채 남모를 고민을 해 온 8명의 믿음복지회 사회복지사와 30여명 발달장애인들의 한숨이 더 크게 들려왔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인터뷰-한선화 사회재활부장

 “통합을 지향해야 합니다. 유치원부터 발달장애인과의 통합교육을 실시하면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선화 믿음복지회 사회재활부장은 발달장애인의 사회적응은 차별없는 통합에서 본격화될 수 있다는 소신을 강하게 피력했다.

 한 부장은 “어려서부터 발달장애인은 회피대상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친구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 부장이 조기 통합교육을 주장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01년 믿음복지회에 몸담기 전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며 부모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발달장애인과의 통합교육을 실시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라는 게 어렵지만은 않다는 한 부장은 “발달장애인을 이해하고 가르칠 수 있는 전문 정보화 강사도 필요하고 교육 프로그램에도 변화를 주어야 제대로 된 정보화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화 교육이 쏟아지고 있지만 발달장애인을 위한 정보화 교육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아쉬움의 다른 표현이다.

 발달장애인의 정보화 교육을 위해 이곳 저곳 전전하고 있지만 기회만 있다면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밀어붙일 계획이다. 이와 함께 발달장애인의 사회적응력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도입할 예정이다.

 발달장애인에게 맞아 온몸에 멍이 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도 있었다는 한 부장은 최근 강렬한 애정표시 공세에 주위의 눈을 살펴야 할 정도로 발달장애인의 달라진 태도에 놀라기 일쑤다.

 일반인들이 발달장애를 심각한 장애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한 부장은 “발달장애인은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며 “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하루 빨리 달라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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