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버유통 시장이 흔들린다

 최근 굴지의 다국적 IT기업 A사 CEO는 곤혹스런 일을 경험했다. 비즈니스파트너사(BP)로부터 e메일 ‘탄원서’를 받은 것. 탄원의 내용은 BP사를 관리하는, 즉 채널영업을 담당하는 일부 직원들이 마무리가 되지 않은 프로젝트에 대해 먼저 ‘주문’을 해줄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그에 따라 제품 할인폭을 타사보다 훨씬 더 높게 책정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BP사간 경쟁을 유발하는 등 비정상적인 영업행태를 벌이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그동안 PC유통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밀어내기식 영업이 수억원대에 이르는 대형서버시장에도 만연되고 있다. 회계연도 마감이나 분기별 실적마감을 앞두고 서버공급업체들이 외형을 부풀리기 위해 유통채널들에게 제품을 대량으로 선공급하고 있는 것. 특히 이같은 밀어내기식 영업이 한 두 업체가 아닌 이미 시장에서는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는데다 경기침체로 IT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 서버시장을 뒤흔들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관례화된 밀어내기 영업=이번 A사의 e메일 탄원사건을 접하는 경쟁사들은 ‘비단 A사만의 문제도, 새로운 사건도 아니다’라는 일종의 ‘동병상련’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A사의 다른 BP 관계자도 “분기 실적을 채워야하는 영업담당자로서는 어떻게든 실적을 올려야하고, 또 계약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라면 채널 입장에서도 그 정도의 ‘편법’은 충분히 수용하는 게 관행이라 크게 문제될 것은 없는데, 아마도 이번엔 그 정도가 좀 심각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경쟁사나 채널들이 이같은 반응을 보이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피해자일 수 있는 채널들조차 인정하듯 ‘선주문’이나 일종의 ‘떠안기’를 하더라도 그만큼의 할인폭을 더 적용받기 때문에 일부 서버유통 기업에서는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특히 매출규모 자체를 무시할 수 없는 일부 기업들은 수주실적과 무관하게 물량을 받아 또 다른 업체에게 넘기는 유통 비즈니스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악화가 주범=밀어내기식 영업에 만연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데서 찾을 수 있다. 특히 SK글로벌 사태로 인한 파장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SK글로벌은 지난해 서버 중심의 시스템 사업에서 4000억원 수준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국내 서버시장 전체 규모가 1조5000억원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할 경우 25% 수준에 해당한다.

결국 SK글로벌을 통해 유통됐던 중대형 서버물량이 줄어든 이상 서버업체 입장에서는 감소분을 대신 맡아줄 ‘대타’를 찾을 수밖에 없으며 이같은 상황이 유통업체에게 무리한 떠넘기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대형 유통사 B기업의 경우 모 서버업체로부터 월평균 10억원 정도 소화하던 물량을 20억원까지 늘려 ‘떠안았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태다.

이렇다할 대형 프로젝트가 없고, 특히 새로운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차원에서 SMB(중소·중견 비즈니스) 영역에 주력하고 있는 요즘 같은 시기에 채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서버업체로서는 위기탈출을 위해 밀어내기식 영업이라는 마지막카드를 던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유통사 목죄는 부메랑 될 수도=문제는 경기회복이 더 늦어질 경우다. 서버업체나 국내 파트너사들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눈에 보이는 매출발생에 성공한다 해도 결국 최종사용자에게까지 공급되지 않은 서버는 ‘그레이마켓(비정상적인 가격과 유통경로를 통해 공급되는 시장)’을 형성해 국내 기업들의 목을 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즉 서버업체들은 이미 과거에도 몇차례 했던 것처럼 시장에 재고로 쌓여있는 물량을 다시 구매하는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일상적인 ‘관행’으로 치부할 수 있는 밀어내기식 영업이 이미 상항을 넘어 섰으며 지금은 전체 서버유통 시장을 뒤흔들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는 게 서버유통업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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