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IT산업-수출·생산 등 피해 일파만파

전국운송하역노조 산하 화물연대의 화물 운송거부가 장기화 국면으로 돌입하면서 가뜩이나 미·이라크 전쟁과 사스(급성중증호흡기증후군)·경기침체 등으로 어려워진 IT경기를 고사 직전으로 몰아넣고 있다. 수도권 화물운송 심장역할을 하는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경인 ICD)마저 운송거부에 동조함으로써 수출차질은 물론 기업들의 생산에도 치명타를 안겨주게 됐다. 더욱이 이같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납기를 지키지 못한 업체들이 해외의 바이어로부터 클레임을 제기당하고 거래선도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또 해외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는 국내 업체들은 적기에 부품 등 원자재를 해외공장에 공급하지 못할 경우 해외공장의 조업차질도 우려된다.

<전자·부품업계 대책 부심>

화물연대의 운송거부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임에 따라 전자관련 업체들은 나름대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형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들은 선박을 통한 우회 운송을 추진하고, 비교적 부피가 작은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들은 항공편을 이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LG전자는 저가 가전제품은 선박 우회 수출을 추진하고 PDP TV와 같은 고가제품은 항공편을 이용하기로 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구미·광주·인천 등 3대 물류거점을 제외한 용인·주안 등 서브 물류거점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삼성전자는 자재 등의 측면에서는 아직 문제가 없어 생산물량 조절 등은 검토하지 않고 있으나 제품 출하를 위한 공컨테이너 확보가 시급하다고 보고 공컨테이너 및 기사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대한통운을 운송사로 지정한 소니코리아(대표 이명우)는 현재 디지털TV·오디오의 수입 및 운송에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파업의 장기화로 하역작업이 지연될 경우 비행기를 통한 제품 수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캠코더·카메라 등 디지털가전을 항공수단을 통해 들여오는 나쇼날파나소닉코리아(대표 야마시타 마사카즈)역시 현재 부산항을 통한 통관 및 운송에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다. 그러나 오는 6월 초에 수입 예정인 물량의 적기 배송을 위해 화물차가 아닌 철도를 이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빌트인 가전업체 밀레는 화물연대의 파업 이후 부산과 인천을 오가는 부인선을 통해 냉장고 등 빌트인 가전제품을 운송한 뒤 건설사 등 최종 수요처에 공급중이다.

 부품업계도 대책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수출의 20%를 선박으로 해결하는 삼성전기는 이를 단계적으로 항공편으로 전환하는 것을 적극 검토중이다. 하지만 당장 20일까지 선적해야 하는 일본 수출물량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삼영전자와 삼화전기는 부산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인천항을 활용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있으며 파츠닉은 대형 화물업체가 아닌 개인 또는 영세 화물업체와 장기계약을 체결, 6∼7개 지역별로 화물운송을 맡겨 물류마비 현상에 대처하고 있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

 

 

 14일 산자부가 잠정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 출하·선적 차질물량은 삼성전자가 324TEU(TEU:20피트짜리 컨테이너), LG전자 220TEU, 대우일렉트로닉스 436TEU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129TEU가 이날까지 선적됐어야 하지만 되지 못했다.

 수출비중이 높은 모니터업계의 경우 물류대란으로 타격이 더욱 큰 상황이다. 모니터업계는 주단위로 물건을 컨테이너에 선적해 외국으로 보내고 있는데 지난주부터 제품선적이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 이번 주말내에 사태가 타결된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제품을 선적하기까지는 최소 2주 정도는 지연되는 것이 불가피해 납기지연에 따른 클레임이나 수입업자들이 공급가격을 낮추는 등 피해가 예상된다.

 해외 PC업체들의 OEM을 맡고 있는 국내 대형 PC업체들도 납기차질로 피해가 우려된다.

 산전업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LG전선은 이번주까지 운송거부가 계속되면 수출부문에서만 30억달러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우종합기계를 비롯해 화천기계·두산·현대 등 공작기계업계도 15일을 기점으로 수출물량이 선적되지 못하고 쌓일 위기에 처했다.

 부품업계는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경인지부 화물연대 일부도 동조파업에 참여함에 따라 인청부두를 물류해소의 복안으로 삼았던 상당수 부품업체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또 해외부품 전시회에 참가하기 위해 제품을 배편으로 선적하려던 일부 부품업체들은 물류마비로 몸만 참가해야 할 처지를 우려하고 있다. 또한 출항수가 동남아시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중남이·중동 등 지역 수출에 큰 차질이 예측된다.

 필코전자는 원자재 재고가 충분해 당장 생산에 타격은 없지만 남미지역 수출에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최용석 이사는 “남미지역 출항 배편이 적은 데다 화물연대 파업이 겹쳐 파업이 해결되더라도 한달 이상의 선적지연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삼영전자 한 관계자는 “부산항 물류기능 정지에 따른 대책을 다각도로 수립중에 있지만 파업이 장기화되면 삼성전자·LG전자의 조업단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예측돼 이로 인한 내수 매출 타격이 더욱 큰 고민거리로 작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자재 수급중단으로 라인 올스톱 위기>

 수출 못지 않게 우려되는 것이 생산 원부자재 수급문제다. 이미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수입원자재 조달난으로 용인 에어컨 공장의 일부 라인가동에 차질을 빚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원자재 부족으로 인해 당초 예정돼 있었던 특근을 취소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단지인 구미·천안지역에서는 이번 물류대란 피해의 핵심이 되고 있다.

 다행히도 TFT LCD 수출은 주로 항공을 이용하고 있지만 원자재 및 화학재료 등은 선박을 이용하고 있고 TV 및 모니터용 브라운관은 부피가 커서 수출입과 주요 원자재 수급도 모두 선박에 의존하면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

 오리온전기·LG필립스디스플레이·삼성SDI 등은 수출용 운송로뿐만 아니라 해외수입 원자재 통로가 막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오리온전기의 경우 중국에서 수입하는 일부 유리벌브 수급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SDI는 PDP 및 2차전지 등의 제품군이 원자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이 회사는 재고물량을 확보하고 있어 당분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장기화될 경우 라인이 설 수 있어 항공을 통한 비상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특히 음극·세퍼레이터 등 일본에서 들여오는 비중이 절대적인 2차전지 제품의 경우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라인을 전면 멈춰야 할 위기에 처했다.

 한국전기초자·삼성코닝 등 국내 유리벌브 공급업체에서도 원자재 수급에 문제가 터져나오고 있다.

 유리벌브의 원자재인 모래는 호주에서 수입하고 있고 화학재료도 최근 원가절감을 위해 중국산으로 대체했다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유리벌브업체들은 자체 보유한 운송편을 풀가동해 고객사 물량공급에 들어갔고 파업의 장기화에 대비해 국내 원자재 업체들을 통해 물량확보에 나섰다.

 삼성코닝 관계자는 “로컬 수출이 90%가 넘어 큰 피해가 없으나 원자재 수급을 위해 다각도로 대책을 마련중”이라고 밝혔고 한국전기조차측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거래선을 다양화하고 자체 운송수단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출입 물량을 대부분 항공편에 의존하는 반도체업계로서는 당장에 큰 여파는 없지만 반도체 생산공정에 들어가는 포토레지스터용 화공약품 등 세척용 화학재료 등은 선박을 이용하고 있어 피해가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 화학재료는 약 3주분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으나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다른 경로를 찾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동부아남반도체 등 일본쪽 수출입 물량에 선박을 이용하는 업체들도 일부 피해가 예상된다. 이들 업체는 재고물량 등을 감안해 대신 항공편으로 운송수단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

<해외공장으로 파급>

 중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공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가전사들은 핵심부품 및 원자재 공급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공장가동에 애를 먹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는 원활치 않은 원자재 공급으로 인해 생산차질과 납기지연이 발생할 경우 바이어와의 신뢰관계에 금이 갈 수 있음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차량용 및 버스용 에어컨을 중국에서 생산중인 위니아만도 역시 히터, 콤프레서 등 에어컨의 핵심부품 공급에 적잖은 차질이 발생하면서 공장가동률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만도의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중국 공장의 조업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하지만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바이어와의 신뢰관계에 적잖은 악영향이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부산항의 물류시스템이 사실상 마비되면서 핵심자재인 컴포넌트 공급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라딕스는 인쇄회로기판(PCB), 셋톱박스 본체 구조물 등 긴급한 자재는 항공수단을 통해 공장으로 공급하는 긴급대응책을 마련했다. 라딕스의 한 관계자는 “화물기를 통한 원자재 배송은 선박에 비해 최대 7∼8배가량 물류비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파업이 확산된다면 생산원가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걱정했다. 

 삼성전자(대표 윤종용)의 경우 SCM제도로 인해 원자재 및 부품조달에 큰 영향을 받고 있지 않으나 파업이 장기화된다면 부피가 큰 부품의 항공운송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대표 구자홍)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2곳의 백색가전 생산공장에서 사용하는 컴프레서 등 핵심부품의 공급차질에 대해 염려를 나타내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해외 생산공장은 일반적으로 1개월 가량의 원자재와 부품을 확보하면서 가동되고 있다”며 “다만 파업장기화에 대비해 핵심부품인 콤프레서의 중국 현지 조달비중을 높이거나 조업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

 

  <정부대책>

 정부는 수출 및 원자재 운송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입 화물운송시 경찰동승이나 경찰차량 호위 등을 요청키로 했다. 또 군 수송차량 및 운전대체 인력수요를 파악해 지속적으로 군수송 인력과의 연계를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산자부도 윤진식 장관이 13일 광주시와 광양항을 잇따라 방문, 현지 수출업체 및 지원기관과 간담회를 가진데 이어 14일에는 부산항으로 자리를 옮겨 수출물품 운송정상화를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 논의에서 산자부는 이번 사태로 수출업체들의 자금경색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고 보고 금융감독원, 한국은행과 협조해 이번 파업사태로 불가피하게 무역금융 등을 상환하기 어려운 기업에 대해 은행들이 무역금융 등의 만기를 연장하는 등 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중소기업이 이용하는 무역금융에 대해 신속한 만기연장 등의 조치를 강구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14일 오후에는 김칠두 차관 주재로 화주업계와 운송업계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간담회를 갖고 군수송차량 및 개인보유 수송장비 등 비상수송 수단 활용방안 및 대책마련에 대해 논의했다.

 한편 전경련도 이날 ‘화물연대 파업사태관련 물류업체 간담회’를 개최하고 이규황 전무를 실장으로 하는 특별상황실 운영에 들어갔다.

 <주문정기자 mjjoo@etnews.co.kr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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