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장관의 외교적 수사

◆정보사회부·조윤아기자 forange@etnews.co.kr

 “한국이 만약 지재권 우선감시대상국에 포함된다면 소프트웨어가 아닌 다른 분야 때문일 것이다.”

 지난 16일 방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간 제프 하디 BSA아시아 부사장의 말이 미 무역대표부(USTR)의 국가별 지적재산권 실태 등급 결정을 보름여 앞둔 우리나라 콘텐츠산업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소프트웨어, 음반, 비디오, 출판, 게임 등 콘텐츠산업 각 분야에서 미국이 매기고 있는 우리나라 지재권 보호 성적표에 따라 향후 무역시 통관절차나 세제상 불이익이 가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미 수출에 절대적인 교역량을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미국의 통상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런 전문가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하디 부사장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다음날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초청 조찬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근절시켜 소프트웨어 등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맞춰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정작 지재권 보호대상인 콘텐츠를 관장하는 문화관광부는 조용한 모습이다. 문화부 담당 공무원은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저작권 확인 권한을 주는 내용의 법개정 작업을 추진중이며 이러한 한국정부의 지재권보호 노력이 공식 외교채널을 통해 미국에 이미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문화부의 느긋한 입장과 달리 미국은 한국의 음반·영상물 시장의 불법복제 사례가 지난해 눈에 띄게 증가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진대제 정통부 장관처럼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직접 나서 미국정부를 안심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말 한마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 우리 옛말이 있다. 소신있는 장관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외교적인 수사(rhetoric)도 기꺼이 감내할 줄 아는 실리추구형 장관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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