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산업부·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
“글쎄요. 그런 제도도 있나요.” 국제수출 통제체제에서 규정한 품목과 상관없이 대량살상무기(WMD) 및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모든 품목을 통제하는 제도인 캐치올(catch-all)이 올해부터 시행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거의 모든 기업의 한결 같은 대답이다.
캐치올 통제제도에 대한 무방비는 정부의 안이한 대처와 기업들의 무지·무시가 한꺼번에 드러난 결정판 같다.
산업자원부는 지난해 말부터 캐치올 제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국내 107개 기업에 직접 공문을 보내고 방문도 해보았으나 기업으로부터의 대답은 “우린 상관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캐치올 통제품목에 포함되지도 않은 광전송장비 제조업체인 A사는 최근 미 상무부의 경고장을 받았다. A사가 시리아로 수출한 장비가 이라크로 우회수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요지였다. 그럼에도 이 회사는 아직 산자부의 포괄승인을 받지 않고 있다.
포괄허가를 받는 일이 힘든 것도 아니다. 수출허가신청서와 첨부서류(계약서·기술사양서·최종사용자 서약서 등)를 제출하면 10일 이내에 발급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국가가 안전한 수출을 보장해주는 보험의 성격이 강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규제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일벌백계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 상무부가 이라크전 종전 이후 가만있을 것 같지 않다. 미국은 소위 테러지원 국가와 WMD 확산우려 국가들에 대한 수출입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한 부품업체 사장이 구속되고 수출이 막혀 결국 도산한 사례까지 있다.
심지어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수출이 많은 공작기계의 경우 원자력 비확산체제에도 적용되는 ‘무기제조용 장비’로 인식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은 캐치올 통제제도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단 한 차례의 설명회를 개최한 주무부처인 산자부도 적극적인 홍보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일본 경제산업성에서는 무려 70명이 캐치올 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데 반해 산자부는 두 명만이 관련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보듯 한국 사회는 일이 터져야 뒷수습에 나서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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