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전쟁터는 사방 30㎝도 안되는 모니터속에 있습니다. 그 안에서 수많은 글자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고객’이라는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라크 전쟁 탓인지 자신의 업무를 전쟁에 비유해 자못 비장하게 말하는 주인공은 농수산홈쇼핑의 고은씨(25)다. 고은씨는 카피라이터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가 아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고객을 대상으로 맛깔스런 말들을 만들어내는 ‘인터넷 카피라이터’다.
고은씨가 인터넷 카피라이터가 된 것은 이제 막 1년을 넘어섰다.
“2001년 신규 홈쇼핑업체인 농수산홈쇼핑에 입사해 홍보업무를 담당하다 지난해 초 인터넷 쇼핑몰이 생기면서 카피라이터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인터넷 카피라이터는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벤트의 카피를 만들고 정보 콘텐츠에 들어갈 각종 읽을 거리를 생산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밤샘작업이 다반사일 정도로 힘들지만 보람도 있고 애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고은씨는 이름 덕분에 이 직업과 잘 어울린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유명 시인과 동명인 사연으로 업무에 관해서도 전폭적인 기대를 받고 있다. 그만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상당하다. 그러나 부담감도 잠시, 일단 일을 시작하면 가공할 만한(?) 카피를 만들어내 동료를 놀라게 한다. 마치 시상이 떠오르는 것처럼 갑자기 생각난 카피였는데 주변 사람들은 침을 튀기며 칭찬을 해댄다. 대표작(?)으로 ‘2003 羊껏 Dream 페스티벌’ ‘선택! 맛eat는 농수산eshop’ ‘텐(10월)·텐(10%) 적립금 대잔치’ 등을 꼽을 수 있다. ‘羊(양)껏 Dream 페스티벌’은 올 초 만든 행사용 카피로 만든 후에 몇몇 유사 쇼핑몰에서 무단으로 옮겨다 사용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매일 하나의 카피를 생각한다는 마음으로 지냅니다. 그러다보니 여유롭다기보다는 쫓긴다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고은씨는 늘 긴장속에서 산다. 인터넷 쇼핑몰은 수시로 이벤트가 바뀌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하나의 작업이 끝나면 쉴 틈 없이 다음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한때 카피라이터가 되고 싶어서 좋은 글이나 시를 적어놓았던 낙서수첩을 지금도 가지고 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 중에서 자신의 카피를 보고 ‘사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 수 있도록 카피도 ‘소비자의 입장’에서 써야 한다는 신념이 고은씨가 늘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좌우명’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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