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화콘텐츠 산업의 또다른 강점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물론 해가 바뀌면서 시장상황이 변화하고 이에 따라 해당업계가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 문화콘텐츠 관련업체들이 추구하는 변화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보다 적극적으로 따르고자 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일례로 일본 문화콘텐츠 산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만화출판 업계에서는 요즘 신인만화가 육성 및 편집자에 대한 재교육과 유통기구의 변혁, 디지털화 등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유통구조를 개발하고 인터넷을 활용한 만화제작이야말로 일본 만화출판 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는 아직 뚜렷한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올해 말부터 시작되는 디지털방송을 계기로 애니메이션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뉴미디어 애니메이션 제작이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동화협회의 야마구치 야스오 사무국장은 “애니메이션 제작공정에 대한 디지털화·온라인화에 이어 최근에는 협회 내에 설립한 ‘디지털 기술 연구회’를 통해 노동집약적인 제작공정을 보다 효율적이고 값싸게 처리할 수 있는 툴 및 다양하고 풍부한 표현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또 최근들어 크게 위축되고 있는 캐릭터시장 활성화를 위한 기업들의 변화도 눈에 띈다. 지난해부터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적극 도입하고 인터넷을 활용한 새로운 마케팅 기법을 선보이는 등 뉴 미디어를 캐릭터 산업의 새로운 비즈니스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6월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플래시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마시마로’를 수입, 인터넷을 통해 보급하면서 이를 캐릭터 상품화한 것과 ‘기동전사 건담’을 비롯한 기존 애니메이션 작품을 인터넷 콘텐츠로 제작해 새로운 마케팅 도구로 활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아직은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기업이 신중을 기하고는 있지만 온라인게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도 콘솔게임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일본 게임업체들이 보여주는 커다란 변화의 모습 가운데 하나다. 한편에서는 PC나 TV를 매개로 한 온라인게임이 주력인 콘솔게임 시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온라인게임 개발에 착수하는 업체도 크게 늘고 있다.
지난해 콘솔게임기용으로는 일본에서 처음 발매된 온라인 MMORPG ‘FFXI’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밖에 최근들어 일본 문화콘텐츠 기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변화의 모습은 많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같은 사례들이 모두 철저한 상업주의에 기초해 소비자들의 구미를 당기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하는 데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이 같은 모습은 아직 고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하는 문제보다는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제작문제에 급급한 국내 기업들에 많은 의미를 던져준다.
<됴쿄=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일본 문화콘텐츠업체 성공사례 - 브로콜리
일본의 문화콘텐츠 업체로 지난 94년 설립 후 10년간 고성장을 이어온 브로콜리라는 중견업체가 있다. 증권회사에 근무하던 샐러리맨 출신인 기타니 다카아키가 대표로 있는 이 회사는 10년이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일본의 캐릭터·이벤트 대표업체로 부상했다.
브로콜리는 설립초기 만화·동인지·클럽이나 코스튬플레이 등의 이벤트를 기획하며 관련상품 판매를 전개했다. 그러던중 TV게임이 신흥 엔터테인먼트로서 인기를 얻자 이를 기회로 게임과 관련한 캐릭터 상품을 판매하는 소매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도쿄 이케부쿠로에 ‘게이머스’라는 소매점 제1호점을 오픈했다.
이후 명성을 날릴 수 있는 극적인 계기가 찾아온 것은 98년이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소매점용 마스코트 캐릭터를 디자인해 판촉지 등에 삽화로 게재했던 캐릭터가 의외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자 이를 이용해 상품화를 전개함과 동시에 광고에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캐릭터가 바로 ‘디지캐럿’이다.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인기상승을 계속해 TV애니메이션, 만화, 비디오콘솔게임까지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소매점 게이머스의 확장도 순조롭게 이어지자 브로콜리는 또 다른 캐릭터 콘텐츠 개발에 착수해 2001년 ‘갤럭시 엔젤’을 발표했다. 당초 비디오콘솔게임을 먼저 제작하려고 개발했으나 애니메이션을 먼저 제작해 방영했다. 디지캐럿에 이어 인기를 모으고 있는 현재로서는 순조롭게 업적을 확대중이다. 브로콜리는 창업 8년만인 작년 일본 주식거래시장인 자스닥에 주식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브로콜리의 이런 성장배경에는 일본의 콘텐츠시장이 미디어 믹스를 통해 복합적인 구조로 변화발전돼 가는 시기와 겹쳐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만화 등으로 출판된 콘텐츠가 인기를 얻게 되면 애니메이션화해 이를 상품화하게 되며 비디오·DVD·게임 등 2·3차 이용으로 이어지는 원소스멀티유즈(OSMU) 사업이 전개된다. 날로 보편화되고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지만 게임 등 새로운 미디어가 확립된 후로는 그 규모나 관련 기업의 복합적인 관계 등이 더욱 거대해지고 정교해지고 있다. 물론 만화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캐릭터로 등장한 경우나 애니메이션으로 데뷔한 경우라도 성공의 길은 대개 비슷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의 형성기를 가장 잘 이용하며 성장가도를 달려온 곳이 브로콜리다. 오리지널 캐릭터 개발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해 자사에서 콘텐츠를 일괄 제작해 캐릭터 상품화 및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유통까지 종합적으로 전개했다.
▲<기고-박송희 소장>일본 문화콘텐츠산업의 특성
상업예술의 역사가 비교적 긴 일본에서 좋은 문화콘텐츠는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창작과 제작을 맡는 크리에이터가 보다 재미있고 색다르게 만들려는 연구와 공들임이 매우 진지하다. 이색적인 아이디어와 치밀한 자료수집에 의한 구성을 바탕으로 창작에 임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눈이 높아진 소비자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작단계에 있어서도 협업과 분업체제가 잘 갖추어져 있다. 프로듀서, 기획자, 연출자, 크리에이터 등의 제작 스태프와 같은 제작 관련에서부터 상품화, 유통, 미디어 등에 이르기까지 공동보조를 맞춰 전개하고 있다. 이는 오랜 세월 업계에서 얻은 노하우와 상관행을 바탕으로 비즈니스를 한다는 상호 신뢰가 전제돼 있다.
그러나 다음에는 당연히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지는 작품 또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소비자의 기호변화를 민감하게 탐지해 작품에 반영하지만 변하기 쉬운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한 경쟁은 몹시 가혹하다. 승리를 쟁취한 콘텐츠만이 시장에서 은혜를 누릴 수 있다. 경제발전의 타이밍과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되는 콘텐츠의 소비형태다.
거대한 인구구조에 의한 소비력을 보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유하고 즐기는 소비형태와 구조적으로 불법제품이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업계 자체가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사실이다. 또한 콘텐츠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이를 소비하며 지불된 대가가 이의 제작·유통에 관련된 단계의 구성원에게 적절히 분배되는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창작에 임하는 크리에이터나 작가에게 있어 다음 창작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동기가 되며 또다시 히트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호순환 구조를 만들게 된다. 폭넓은 소비자와 깊이 있는 소비자가 병존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최대의 소비자층인 아동과 청소년 인구가 감소해 콘텐츠시장의 미래를 염려하는 소리도 많이 있으나 이는 소비자 연령층 확대라는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와 병존하는 소비자층이 소위 오타쿠라고 하는 헤비유저인 동시에 오피니언 리더인 마니아층이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비디오의 제작은 마니아층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로 인해 일반 대중에 인기가 확산되는 경우도 많다. 제작업체가 대충 만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니아층에게 충분히 부응할 수 있는 콘텐츠는 표현의 자유에서 나올 수 있다. 일본은 이 점에 있어 비교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물론 문화적 차이로 인해 표현의 규제 등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시대의 변화나 창작의 세계에서는 필연적으로 자유로운 발상과 표현방법이 요구된다. 만화에 있어 소재의 다양성은 표현의 자유와 무관하지 않다.
<박송희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일본사무소 소장 shpark@kocc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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