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창 IT담당 부국장 wcyoon@etnews.co.kr
미국의 16대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이다. 그는 미국 역사상 가장 겸손했고,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16대 대통령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엊그제 취임했다.
취임식은 대구지하철 참사가 가져온 슬픔이 다 가시기 전에 이뤄져 다소 엄숙하게 진행됐지만 기존 권위주의적인 모습은 많이 사라진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도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는 취임사의 대부분을 우리가 현시점에서 풀어야 할 문제들과 이뤄야 할 목표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데 바쳤다. 그런 목표들을 이룬 뒤에 나올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았다. 고상한 표현들이 많이 담기게 마련인 대통령 취임사인데도 기억할 만한 구절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
해결할 문제가 워낙 많은 데다 다양한 집단이 대통령의 관심을 요구하므로 현실적 프로그램들을 짚어간 것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5년 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지금 경제가 무척 어렵고 전국민의 마음이 이 고비를 넘기는 일이 급한 만큼 차라리 적절한 면도 있다. 그래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수렴하는 주제가 제시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IT분야에서 볼 때 이런 주제에 가장 가까운 것을 찾자면 ‘제2의 과학기술 입국 달성’이다. 따로 나눌 수 있는 주제지만 ‘지식정보화 기반의 지속적 확충’과 ‘신산업 육성’을 통해 과학기술 입국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새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고 실행해야 할 과제들이다.
하지만 과학기술 입국 달성은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제시된 과제라 한편 진부한 느낌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엊그제 물러난 김대중 대통령은 출범 초기 정부조직 개편에서 ‘과기처’를 ‘과학기술부’로 격상시키고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했다. 또 연구개발비 예산을 매년 늘리는 등 5년 내내 과학기술정책에 무게를 두기도 했다. 그동안 정부 지원으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연구보고서 가운데 ‘세계 최초’ 또는 ‘세계 최고’라고 흥분한 보고서가 적지 않고 이들만 모아도 이미 기술강국은 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기술후발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되새겨봐야 한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서 이번 과학기술 입국 과제가 진부하다거나 지난 정부가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무한기술경쟁시대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기술개발능력을 키우는 길밖에 없기 때문에 과학기술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약속의 실천이다. 이제 과학정책과 행정의 환골탈태적인 수술 없이는 제2의 과학기술 입국 달성은 불가능하다. 물론 노 대통령은 개혁으로 많은 것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이제 노 대통령의 열성적인 지지자인 노사모 회원들은 대통령이 기대에 부응하기를 바라며 국정 운영을 지켜보는 감시자로 바뀌었다. 때문에 취임사에 제시한 과제들은 분명 실천에 옮겨야 한다. 전임 대통령들이 취임할 때 내세운 숱한 구호들이 퇴임할 때는 어찌 됐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모든 과제의 성패는 노 대통령과 새 정부에 대한 나라 안팎의 신뢰 여부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하겠다고 한 일은 하고, 않겠다고 한 일은 안하는 정부’라는 믿음이 국내외에 심어져 ‘말의 권위’가 세워져야 모든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약속한 과제를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든 약속을 상황에 맞게 성실하게 수정해가는 일도 중요하다. 그래야 기업이나 국민이 정부를 믿고 자발적으로 동참할 것이다.
5년 뒤 ‘거짓말을 하지 않은 대통령’으로 평가될 수 있다면 노 대통령은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지도자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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