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레고블록의 교훈

◆황규환 스카이라이프 사장 khceo@skylife.co.kr

　며칠 전 한 지인과의 만남에서 레고(Lego)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인은 어린이 장난감인 레고가 갖고 있는 호환성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됐다가 다시 뜯어서 조립하면 배가 되고, 집도 되는 레고블록. 순간적 필요에 따라 전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화하는 가변성을 갖고 있으며, 그 가변성은 표준성에 기초를 둔 호환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지인의 결론은 우리 산업도 레고처럼 ‘표준성에 기초를 둔 호환성’을 갖출 때 그 경쟁력이 훨씬 강화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방송·통신 융합에 즈음하여 산업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우리의 방송산업계를 떠올려보았다. 우리의 방송은 레고블록과 같은 ‘표준성에 기초를 둔 호환성’이 절실히 필요한 분야 중 하나기 때문이다.

　각 방송사업자들은 자신이 속한 산업분야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과연 그들은 어떤 표준성을 갖고, 서로간에 어떻게 호환이 이뤄지고 있을까.

　최근 방송환경이 급변하면서 사람들은 디지털방송·데이터방송이라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디지털방송은 아날로그방송과는 달리 그 활용성이나 확장성, 응용성에 있어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다.

　디지털방송은 많은 양의 고화질·고음질 영상을 품질저하 없이 송출할 수 있고, 시청자와 상호교류가 가능한 인터랙티브방송의 운용까지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데이터방송은 디지털기술을 기반으로 진정한 양방향 방송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있어 각 사업자들은 타 사업자보다 먼저 새로운 시장으로 진출해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상파방송사업자들은 2001년 말 주당 10시간으로 디지털방송을 개시했고,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는 올 3월 140여개 채널로 24시간 ‘올 디지털(all digital)’ 방송을 개시했다. 뿐만 아니라 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도 디지털방송으로의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 따른 표준성은 확보되어 있을까. 지상파방송은 아직도 디지털 전송방식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고, 종합유선방송사업자는 디지털방송에 따른 수신자제한시스템(CAS) 탑재 방식에 대해 정부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방송사업자들이 데이터방송을 본격적으로 추진함에 있어 관련 기준 마련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호환성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방송기술은 사업자 스스로가 새로운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를 변신시키고 있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볼 수 있도록 페이퍼뷰(PPV)서비스가 도입되고 있고, 프로그램과 관련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는 양방향 데이터서비스가 등장했다. 각 사업자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디지털자원을 바탕으로 시장상황에 맞춰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야만 한다. 호환성이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 그 패러다임은 더욱 자유로운 환경에서 21세기 방송·통신 융합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규제보다는 자율에 의해, 평등한 원칙 위에서 진정한 경쟁을 하고, 이를 통해 발전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화할 수 있는 힘이 지금 방송산업계에는 필요하다.

　어떤 사업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공평한 기본 원칙과 사업자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주는 현실적 정책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레고블롣에서 볼 수 있는 ‘표준성에 기초를 둔 호환성’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길이며, 궁극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