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프리즘]인간과 컴퓨터

　◆로지텍 구에리노 드 루카 CEO

　오늘날 전세계 경제인구 중 많은 사람이 디지털 세계에서 PC를 통해 일하고 여가를 즐기며 배우고 커뮤니케이션할 정도로 높은 PC의존도를 갖게 됐다. 하지만 PC 보급이 안정상태로 접어든 오늘날 PC업계는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다. PC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든 것일까.

　우리의 생활과 분리할 수 없게 된 PC는 디지털 세계의 중심에 있으며 그 목적은 더이상 워드프로세싱의 속도를 높이고 신속하게 스프레드 시트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PC는 이미 ‘단순한 자료 입력과 속도’의 차원을 넘어 디지털 이미징과 홈미디어센터로 자리잡았다. PC를 통해 디지털 사진·DVD·영화·디지털 오디오 파일, 그리고 기타 풍부한 교육 및 엔터테인먼트용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조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터넷의 일반화로 막대한 인구가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됐다. 여러 면에서 PC는 더 많은 기능과 잠재력을 과시하며 매우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성공을 영위하고 있다.

　PC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이전의 PC와는 다르게 발전한다면 과연 누가 요즘과 같은 하이테크 업계의 침체기에도 끄떡없이 살아남아 번영을 구가하게 될 것인가. 바로 인간과 컴퓨터간 경험을 지원하고 강화하는 컴퓨터업계 여러 부문의 기업들이다. 이들은 인간과 PC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에 역량을 집중하며 컴퓨터산업의 존재 의의를 재정립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의 존재란 다름아닌 인터페이스인 것이다.

　컴퓨터의 발전사를 보면 처음에는 CPU가 곧 컴퓨터였고 이 구도에서 사용자는 극히 사소한 부분일 뿐이었다. 이후 SW와 OS가 컴퓨터를 대변했고 이 단계에서 거대기업들이 비상국면으로 진입하면서 보다 강력한 애플리케이션을 쏟아냈다. 하지만 사용자는 여전히 뒷전이었다. 네트워크가 컴퓨터의 자리를 차지하자 사용자는 거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하나의 노드에 불과하게 됐다. CPU·SW·네트워크는 각각 성숙한 분야로서 발전을 거듭해 점차 사용자 경험이 시장의 성패를 좌우하게 하는 핵심요인으로 부상하게 됐다. 그리고 사용자 경험이 단연 최대 가치로 자리잡게 된 상황에서는 인터페이스가 컴퓨터를 대변하게 됐다. 아울러 이 인터페이스를 처리하는 주변기기도 컴퓨터를 정의하는 데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이런 현상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다. TV업계만 하더라도 TV 자체보다 특별한 프로그래밍, 디지털 케이블 제품 및 기타 부가제품을 통해 사용자의 TV 사용 경험을 풍요롭게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PC업계도 단지 새로운 PC의 판매에 치중하기보다 PC를 통해 사용편의을 도모하고 제반 기술과 SW, 보다 직관적이고 강력한 정보 인터페이스를 지원함으로써 사용자 만족의 지평을 열고 있다. 주변기기도 새로운 기술과 연결 옵션, 그리고 미학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진 탁월한 디자인을 채택해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동성을 갖춘 무선과 광센서 방식의 신기술, USB와 블루투스 같은 새로운 연결 옵션, 편리함과 유연성을 감안한 산업디자인의 새로운 미학 등이 주변기기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인식한 시스템공급업체들은 표준 주변기기 제품에 미학적으로 탁월한 디자인을 접목시켜 제품의 차별화를 모색하고 있다. 투버튼 볼마우스 대신 광스크롤 마우스가 등장해 소비자 호응도를 확대한 것이 일례다. 그리고 이 같은 새로운 차별화 전략을 추구하는 공급업체들이 시장판도를 결정해가고 있다.

　인간과 정보를 잇는 인터페이스가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은 지금 PC 서비스용품 시장을 공략하는 업체들은 직관적이고 강력한 인터페이스 제품으로, 시스템공급업체는 스스로의 대체영업력 마련을 통해 영업기회를 확대해가고 있다. 비디오 및 무선제품 같은 새롭고 흥미로운 주변기기의 보급률이 마우스와 키보드의 일반적인 보급률보다 현저히 낮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잠재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주변기기시장은 조만간 지속적인 혁신과 성장을 구가할 매력적인 시장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