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지난달 중순 막을 내린 중국 공산당의 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미래의 분투 목표를 ‘20년내 중진국 진입’으로 설정한 것만 보더라도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놀라운 속도로 팽창하는 중국경제의 무서운 기세는 이를 잠시 잊게 한다. 더 나아가 머지않아 중국이 경제대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보편적인 정서는 해외 선진국과 주변국가들로 하여금 친중국 정책을 펴게 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릭 왜고너 GM 총괄사장은 “아직 중국전략을 수립하지 않은 회사는 글로벌 전략의 실현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는가 하면 크리스토퍼 갤빈 모토로라 CEO는 “중국모토로라의 목표는 진정한 중국회사가 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비약적인 경제성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중국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전세계 어느 국가도 따라올 수 없는 인적자원이 중국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 지도부의 리더십과 혁신적인 경제정책이 주효했지만 그 원동력이 풍부한 인적자원에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중국의 이공계 학부는 한국의 10배, 석박사 과정은 3배 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내년도 대학졸업생은 250만명. 이 가운데 이공계 전공자는 50만명에 달한다. 중국은 단순노동력뿐만 아니라 첨단 기술인력에서도 ‘인해전술(人海戰術)’을 구사하며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미국의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는 최근 중국의 막강 브레인 파워가 세계 기업을 영토내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중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근대화 초입의 치명적인 공백이었던 문화혁명(66∼76년)으로 고갈됐던 중국의 고급인력이 고급인력 육성정책으로 전환한 지 30여년만에 폭증, 경제를 포함한 모든 산업분야에서 그 결실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출중한 기술과 능력을 갖췄으면서도 임금은 저렴한 중국 현지의 고급인력들이 세계 유수기업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급 전문인력을 숙청 대상으로 삼았던 문화혁명 직후 78년 한해동안 중국에서 배출된 대학원생은 9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0년에는 그 수자가 5만9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올해초 발표한 ‘2001년 중국 통계공보’에 의하면 지난해 17만명이 대학원에 입학한 것으로 조사돼 2∼3년 후의 대학원 졸업생은 2000년에 비해 3배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20년 후 중국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인 연간 40만명의 대학원 졸업생을 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공계 대학 졸업생의 경우 지난 2000년 45만명에서 2004년에는 8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는 등 급증을 넘어선 폭증추세에 있다.
컴퓨터 및 반도체 칩설계부문에서 학사학위 이상의 중국내 고급인력의 임금수준은 미국의 10분의 1, 대만의 3분의 1에 불과한 것도 장점이다.
이 점을 착안해 10여년전 중국에 진출한 모토로라는 현재 1000명 가량인 중국인 엔지니어 및 연구원을 2006년까지 5000여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마쓰시타전기는 베이징기술센터에 4억달러를 투자해 오는 2005년까지 1500명의 연구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중국에 연구개발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중국의 고급 기술인력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저임 인력풀 덕분에 세계적인 생산기지로 부상한 중국대륙이 풍부한 고급인력을 토대로 산업구조 고도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대학개혁=‘대학은 인재양성과 관련 질과 양 모든 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이는 대학을 평가하는 중국 정부의 기준이자 대학의 존재 이유다. 중국은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대학이 동시발전할 수 있는 개혁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수적 우위만으로는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른바 대학개혁이다.
중국은 엄연한 사회주의 국가지만 대학교육에 관한 한 철저한 자유주의체제를 지향한다.
중국의 대학개혁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두 부문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우선 하드웨어 개혁은 대학과 학문의 통폐합이다. 94년 청두과학기술대학과 쓰촨대학의 학교간 통합을 시작으로 지린대, 저장대학 등 4∼5개 대학이 통합된 형태의 거대 대학이 속속 등장했다. 대규모 교수의 감축은 물론 대학통합으로 총장은 1명만 남기고 퇴출시키는 가혹한 구조조정도 뒤따랐다.
소프트웨어 개혁은 우수학생 양성과 실력있는 교수 초빙, 선진 커리큘럼 도입이 핵심이다. 90여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 칭화대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사용중인 영어원서 교재를 올해부터 도입했다.
국방과학대학의 대학원 과정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영어로 강의 및 토론, 시험을 보는 전교육 영어화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중이다.
중국대학들은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억대 연봉을 주고 미국이나 영국 등 외국 명문대 교수들을 영입하고 있다. 칭화대는 올해에만 외국 명문대에서 연봉 100만위엔(약 1억6000만원) 지급조건으로 초빙교수 18명을 영입했다.
또 인재의 품질관리를 위해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닌 혁신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데 교육의 역점을 두고 학생들의 능력배양이 가능하도록 경쟁시스템을 활성화하고 있다.
칭화대의 경우 한해 300만명의 입시생 가운데 가장 우수한 3000명이 입학한다. 올해 입학생 중 각 성과 시의 고등학교에서 수석졸업한 학생이 28명이고 10등 이내에 든 학생비율이 75%에 달한다.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학문에 몰두하게 하고 교수에게는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욕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나도록 경쟁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중국대학들은 교수의 봉급을 세가지 기준으로 평가해 지급한다. 생활급격인 본봉과 연구 프로젝트 수행결과에 따라 지급하는 인센티브, 학장이 평가해 가감하는 수당 등으로 세분해 철저한 능력급제를 실시한다. 연구하지 않은 교수는 대학에 남아있는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중국의 미래를 책임지는 이공계=덩샤오핑이 ‘과학기술은 제1의 생산력’이라고 강조했듯이 중국의 당 지도부는 ‘중국의 미래가 이공계 출신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 경쟁발전을 위해선 고위직에 기술관료가 많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중국은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들이 정부 요직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장쩌민 국가주석을 비롯해 개혁개발 정책을 주도하는 주룽지 총리, 후진타오 국가부주석 등 실력자들이 이공계 출신이다.
기업현장이나 지방정부 근무경력이 필수적인 중국 관료사회 풍토에서는 전문기술을 모르면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잡기 힘들다.
전국의 대학수는 1841개. 이중에서도 베이징대와 칭화대는 대학의 양대산맥이라 평가된다. 인문학계를 베이징대가 이끈다면 이공계는 실용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칭화대가 이끌고 있다.
지난달 치러진 제16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칭화대 출신이 대거 등용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50년대 이후 칭화대 출신 차관급 이상 공직자가 300명이 넘는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주룽지 총리와 후진타오 국가부주석을 비롯해 현재 정치국원 중 3분의 1이 칭화대 출신이다.
제16차 전국대표대회를 계기로 부상한 후진타오 국가부주석의 칭화대 인맥중에서는 우방궈 부총리와 우관정 산둥성 서기, 자춘왕 공안부장, 왕수청 수리부장, 톈청핑 산시성 당서기, 천칭타이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부주임 등이 있다.
■中 종합 인재개발 계획
지난 6월 중국은 건국 이후 처음으로 국가적 차원의 종합적인 인재개발 계획인 ‘2002∼2005년 전국 인재대오건설계획 요강’을 확정 발표했다. 종합국력의 배양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향후 10년내에 중국을 ‘인재강국’으로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요강은 △당정 분야 △기업경영관리 분야 △전문기술 분야 △서부 대개발 분야 △해외 및 유학인재 유인 △인재교육 및 선발 △인재 장려제도 등으로 이뤄져 있다.
당정 간부들은 부정부패와 비리를 막기 위해 보수를 대폭 올리는 한편 상여금을 지급하고, 기업경영관리 간부는 자본주의 국가와 같은 CEO 제도 및 연봉제를 도입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국토의 균형개발을 위해 서부지역에 젊은 우수인재들을 집중 배치하고, 해외 우수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높은 보수와 각종 사회보장 혜택을 주는 것은 물론 거류증 제도의 개선과 함께 외국인의 중국 귀화정책까지 적극 펴기로 했다.
요강은 “2000년말까지 전문대 이상 고등교육 인구는 6360만명으로 당정 간부는 585만7000명, 기업경영관리 인원은 780만1000명, 전문기술 인원은 4100만명, 기타 894만2000명인데 이는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한 저조한 수치”라면서 “이같은 인재군으로서는 21세기 중국의 부흥전략과 세계경제의 글로벌화 등 국제환경에 적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중국은 2005년까지 고등교육 인구를 8350만명 이상, 특히 전문기술 인력을 5400만명 이상으로 늘려 전체 인구의 6.3%까지 끌어올리는 인재개발 정책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분야별로는 우수 당정 간부 양성을 위해 첨단과학과 관리지식을 갖춘 젊은 인재를 등용하되 국내외 연수기회를 대폭 확대하며, 국유기업과 대학 및 대학원, 과학연구원, 다른 사회단체는 물론 여성과 소수민족, 비공산당원 중에서도 당정 간부를 선출할 수 있게 하는 등 간부 등용의 문호를 다양화한다는 내용이다.
특히 경제개발을 위한 전문기술 인력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 중점 연구분야에 대폭적인 지원을 하고 기술자격증 제도를 도입하며 교수의 경우 ‘학술휴가’를 얻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중국은 요강의 후속 조치로 당 중앙위 판공청과 국무원 판공청이 중심이 돼 기술이민법을 제정했다. 인구문제로 시달려 온 중국이 해외 화교나 외국인 등의 중국 이주 및 정착을 위한 이민법을 제정한 것은 가히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기술이민법에 따른 유치대상 인재는 △정보통신 △바이오공학 △첨단 재료공학 △선진 제조기술 △항공우주공학 △금융 △법률 △국제무역 △과학 기술관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해외 인재들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통계로 본 2001년 중국 과학기술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