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낙경 KTB인큐베이팅 사장 song@ktbi.co.kr
IMF 이후 우리 사회가 당면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실업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정부의 벤처육성정책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각종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이를 통해 벤처창업을 활성화했으며 벤처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그러나 최근 경기불황과 코스닥시장 침체, 벤처 관련 비리 등이 한꺼번에 얽히면서 벤처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의 이런 벤처지원정책도 함께 호된 시련을 겪고 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최근 발표한 ‘벤처기업 재도약 방안’에서 창업지원에 대한 계속적인 지원 의지를 보인 점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다. 잔뜩 위축돼 있는 벤처기업들이 다시 우리 경제의 한 축을 짊어질 수 있도록 재도약을 위한 건전한 토양과 기반을 조성하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의 특징을 살펴보면 그동안 정부가 주도해온 벤처지원정책이 상당부분 시장경쟁논리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벤처기업에 대한 정책자금 등 직접지원 기능은 가능한 한 지양하고 대신 벤처기업들의 본질적인 성장을 지원하는 시장 인프라 확충에 주력하기로 것이 한 예다. 이를 위해 창업보육 및 창업지원 기능을 강화하고, 벤처캐피털의 유동성 확충을 지원하며, 벤처기업의 기술혁신능력 배양과 국내외 시장개척 활동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대책 중 창업지원방안은 대학·지자체 등에서 운영하고 있는 창업보육센터가 단순한 창업지원공간에서 탈피해 창업기업의 실질적인 생산영업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생산지원공간으로 대폭 전환하고, 학교 건물이나 공공건물 등 민간 이전대상 공공시설을 후속인큐베이팅(포스트 비즈니스 인큐베이팅) 공간으로 우선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벤처기업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나 보스턴, 호주 시드니 외곽에는 지방 정부와 대학이 협력해 낡은 공장건물을 개조해 많은 창업기업(스타트업)들을 입주시키고 지역 내 전문가 그룹과 연계해 이들 기업의 경영활동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이 활성화돼 있다. 선진국인 그들이 경기침체에 좌우되지 않고 꾸준하게 창업을 지원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아울러 이번에 마련된 대책은 창업지원서비스를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센터마다 인큐베이팅 전문가(BI매니저)의 채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국내 창업보육업계의 상당수를 이루는 대학 창업보육센터의 경우 대부분 소속대학의 교수들이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어 전문적인 인큐베이터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역량있는 민간전문가들이 대학이나 공공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하므로써 창업초기 기업들의 시장진입률을 높이고 경쟁력을 갖춘 벤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옛글에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船)가 필요하고,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좋은 말(驥)이 필요하며, 세상을 지배하려면 유능한 사람(賢)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기업활동에 대비하면 배는 자금이요, 말은 사업모델이고, 사람은 핵심인재라 할 수 있겠다. 정부의 벤처지원정책도 자금지원 차원에서 벗어나 시장 인프라를 확충하므로써 기업들의 사업모델을 건실화하고, 나아가 역량있는 인재들이 창업지원분야에 참여토록 지원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IMF경제위기를 조기에 극복하고 21세기 디지털경제를 주도하는 역할자로서 기대를 한몸에 받던 벤처기업들이 오늘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또다시 우리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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