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어김없이 극장가에 얼굴을 내밀던 성룡이 올해는 찬바람 부는 초겨울녘에야 나타났다. 그것도 터프한 액션배우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서양식 정장(턱시도)을 쫙 차려입고서 말이다. 신작영화 ‘턱시도’에서 자가용 운전사 성룡은 어쩌다 첨단기술로 제작한 정장을 입자 온갖 초능력을 지닌 슈퍼맨으로 변신, 특유의 액션연기를 펼친다. 그저 평범한 오락영화지만 필자의 관심을 끈 대목은 성룡이 자신의 신체적 능력이 아니라 첨단과학의 힘을 빌려 영웅이 된다는 기본설정 자체였다. 그는 무공연마를 위해 혹독한 수련과정을 묵묵히 견디고 총칼로 무장한 악당도 언제나 맨손으로 제압하는 근육질의 영웅캐릭터를 고수해왔다. 신체를 이용한 액션연기에 관한 한 성룡의 위치는 가히 독보적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성룡은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식 의복(로봇슈트:robot suit) 안에서만 신통한 능력을 발휘하는 ‘약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영화에서 턱시도는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기계장치로 증폭시키는 로봇슈트기술의 이상향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 의복처럼 사람이 직접 들어가 조정하는 로봇슈트는 그 역사적 뿌리가 매우 깊다. 서양에서는 신비한 괴력을 발휘하는 갑옷, 망토를 입고 영웅이 되는 전설이 매우 흔하다. 어린 시절 만화로 접했던 로봇태권V, 마징가Z 등 거대로봇병기도 사람이 직접 탑승하는 기계장치란 점에서 로봇슈트의 전형이다.
영화 턱시도와 유사한 현대적 의미의 로봇슈트도 머지않아 등장할 전망이다.
미국 국방부는 병사들을 ‘600만불의 사나이’ 같은 슈퍼맨으로 만드는 근육옷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각개 병사에게 일종의 외장형 근육인 로봇슈트를 입혀서 초인적인 순발력과 지구력, 높은 빌딩을 뛰어넘는 능력까지 부여한다는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계획이다. 만약 이런 형태의 군용로봇슈트가 실용화된다면 전통적인 보병부대는 강력한 기계근육의 도움을 받는 첨단보병의 스피드 앞에 손쉬운 먹잇감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이라크전이 발생한다면 바그다드의 복잡한 시가지 건물벽을 개구리처럼 뛰어넘는 특수부대가 목격됐다는 외신보도가 흘러나올지도 모른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성룡은 돌연 첨단기술로 제작된 턱시도차림으로 등장해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아마도 그는 인간의 신체능력만으로 21세기 첨단기술로 무장한 악당을 제압하는 것이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한 듯하다. 이는 현대적 액션물에 있어 손발로 싸우는 근육질 영웅이 첨단과학기술에 점차 밀려나는 씁쓸한 세태를 반영한다. 외팔이 검객 왕우, 이소룡에 이어 홍콩무술영화의 자존심을 지켜온 대들보 성룡마저 정통파 액션연기를 포기하다니. 신체능력의 극한을 보여주던 날렵한 성룡의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 아쉽기만 하다.
bailh@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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