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싱글족을 겨냥해 소형냉장고 수출을 추진하던 한 무역업체는 최근 이를 백지화했다. 일본 정부의 가전제품 리사이클법으로 인해 국산 제품은 가격경쟁력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인천에서 중전기 제조 전문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A사장은 최근 자사 신제품을 일본에 수출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중전기 관련제품은 일본 수출시 현지에 애프터서비스(AS)센터를 의무적으로 설치·운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환경부담금 부과, AS센터 설치요구 등 일본 정부의 보이지 않는 각종 비관세장벽으로 인해 대일 IT무역 역조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해 전기·전자 등 IT 품목의 대일수출은 55억달러. 하지만 일본산 IT 제품의 수입은 96억달러를 기록, 우리나라는 매년 수십억달러의 대일 IT교역 적자를 보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우리나라는 한번도 일본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이에 따라 지난해까지 37년간 대일무역적자 누계액이 1702억달러에 달한다.
◇일본 가전 리사이클법, 국산 가전제품에 불리=일본 정부는 작년 4월부터 폐가전 제품의 환경파괴를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가전 리사이클법’을 전격 시행, 현재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4개 품목에 대해 이 법을 적용하고 있다. 운영실태에 따라 PC와 주변기기로 확대될 전망이다.
문제는 요금책정법. 제조·수입자가 소비자에게 청구하게 돼 있는 리사이클 요금은 현재 대상품목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어 냉장고의 경우 리사이클 요금이 4600엔으로 크기에 상관없이 동일하다. 따라서 주로 소형·저가 제품을 일본에 수출하는 한국 가전업계는 대형·고가 제품 판매를 위주로 하는 일본업체에 비해 불리한 경쟁조건에 놓이게 됐다. 이는 곧 우리나라 제품의 일본시장 진출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대일 중전기 수출=일본에 중전기 관련 제품을 수출할 경우 일본 구매처는 사업체 등록수속을 요구한다. 이때 수출업체가 일본 현지에 AS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지 않으면 등록이 불가능하다. 국내 관련업계는 한일간 지역적 인접성 등을 들어 “문제 발생시 신속 대응이 가능하다”며 AS센터 운영 의무조항의 축소 또는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비관세장벽은 중전기 분야 대일 무역역조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전기산업진흥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중전기 대일 수출은 총 1억9274만달러였다. 하지만 일본산 중전기는 7억6870만달러어치가 수입돼 수출의 4배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박부규 한국무역협회 동북아팀장은 “중전기 제품은 그 특성상 본사 기술진 체류 등 AS센터 운영이 지극히 어렵고 제3국에 AS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도 세계적으로 극히 드문 실정”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AS센터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은 외국기업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무역협회 무역연구소는 최근 ‘일본의 비관세장벽 현황 보고서’를 작성, 이를 통상교섭본부 등 우리측 정부에 건의자료로 제시했다. 또 이 보고서를 일본어판으로도 제작해 일본정부에 전달하고 제도 개선을 요청할 계획이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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