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생산성본부 이희범회장

 ‘수석·수석·수석. 고향 형님. 한국산업발전의 산증인.’

 지난달 26일 30년에 가까운 공직생할을 청산하고 한국생산성본부 수장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희범 회장(53·전 산자부 차관)을 주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수석’이란 별칭은 그의 실력을, ’고향형님’이란 별명은 그의 인품을, ’한국산업발전의 산증인’이란 평가는 그의 경험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회장은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석으로 입학했고 대학원 재학중에 제12회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으며 수재들이 몰려 있는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에서도 수석 졸업을 놓치지 않았다.

 “수석으로 졸업하고 입학했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처해진 환경에서 어느정도 최선을 다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지요.”

 수석이란 별칭이 싫지만은 않은 듯 웃음을 띄면서도 이 회장은 ’공부(일)벌레=수석’이라는 인식 때문에 주위에서 자신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 놨다. 더욱이 공직 생활을 오래한 그이기에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인간이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쉽다.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공직 생활을 오래하신 어떤 분은 집에서도 ’아니 결제도 안받고 누가 이런 반찬 차리라고 했지’라는 말을 한답니다. 수석이라는 꼬리와 공무원 인생이라는 이력 때문에 저를 처음 만날때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한 번 만나고 나면 동네 아저씨로 생각하면서 빠르게 가까워집니다.”

 실제로 이 회장은 산자부 시절 선후배들 사이에서는 ‘머리 넥타이 맨’으로 알려져 있다. 동료들끼리 술한잔 하는 자리에서 넥타이를 머리에 메로 분위기를 띄우기 때문이다.

 “저는 격식을 제일 싫어합니다. 생산성본부에서도 직원들에게 간단한 보고는 전화로 대체하고 굳이 양복 웃도리를 갖춰 입고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계속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회장은 자신의 젊은시절 에너지를 우리나라 산업 발전에 쏟아 부었다. 73년 5월 상공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81년부터 2년간 대통령 사정비서실 행정관을 거쳐 상공부 초대 정보기기과장, 수출과장, 주미대사관 상무관, 총무과장, 전자정보공업국장, 주EU대표부 상무관, 산업정책국장,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산업자원부 차관보, 자원정책실장 그리고 차관직을 경험했다.

 “장시간 공직에 있으면서 기관차처럼 앞만보고 달려왔습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오로지 산업·무역에 관련된 정부 정책에 대해서만 팠고 차관시절에는 산자부 조직의 살림살이만을 생각했습니다. 이제 공직생활을 정리하면서 생산성본부 회장이라는 새로운 직책에서 겪게 될 경험들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찬간담회·세미나·관계기관과의 만남 등으로 이 회장은 요즘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요즘 그의 머리속에는 ‘세계 1등 아시아 1등의 생산성본부’ 외에는 없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은 ’생산성본부 혁신의 엔진’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재료 찾기에 모든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회장에 취임하기 직전 3주 동안 선배 후배 등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망중한의 귀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이 기간 제가 들은 선배 충고 가운데 가슴에 가장 와 닿은 것은 ‘회귀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에 충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망중한의 3주는 제가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는 산 교육을 받은 기간이기도 합니다.”

 취임한 지 10일도 안된 이회장이지만 이미 그의 머리속에는 생산성본부의 기본적인 운영계획이 마련돼 있는 듯했다.

 “생산성본부는 지난 57년 설립돼 현재 45년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법적 지위는 많이 변했지만 현재적 경영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업진단사업을 시작해 컨설팅사업의 개척자역할을 수행했고 현재는 한국형 기업진단 모델의 개발, 5만여명의 핵심 인력 교육 등 국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중추기관으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습니다. 국가발전을 위해 너무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사실 어께가 너무 무겁습니다.”

 이 회장의 수첩에는 ‘생산성본부 개선·개혁 46개 과제가 빼곡하게 쓰여 있다. 열흘간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정리해 논 것들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이미 각 팀에 넘겨 검토하라고 지시해 놓은 상태다.

 “생산성 지수 통계, 국가고객만족도, 생산성향상대회 등은 생산성본부가 주관하고 있는 주요사업으로 국가경제발전을 측면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16개국 생산성본부가 함께 모이는 국제회의도 국내 유치 횟수를 늘려나가 우리나라의 지위를 높여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일본과 중국 생산성본부와 함께 할 수 있는 협력 프로그램을 만들어 동북아 생산성 향상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 회장은 산자부에 있으면서 교육인적자원과 관련된 각종 회의의 산자부 대표로 참석했다. 또 공학한림원 회원이며 대학총장들의 모임인 공과대학학장협의회 창립에도 크게 기여했다. 또 대학 평가협의회에 위원으로도 위촉돼 있다. 이 때문에 인력개발에 대한 그의 지식과 안목은 남다르다. 특히 산업정책을 수립했던 산자부에서의 경험은 우리 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에 대해 정확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줬고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국가 인력개발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

 “교육은 백년지대계입니다. 요즘처럼 사람과 교육이 절실한 시기에 생산성본부에 온 것은 큰 영광입니다. 생산성본부는 1년에 5만3000명의 인재를 양성하기 때문에 웬만한 대학보다도 국가 인재 양성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대 변화에 빠르게 맞춰나가기 위해 일반 대학과 달리 강사를 아웃소싱함으로써 조직은 작지만 효율적으로 시대가 필요로하는 인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즉 대학이 못하는 부분을 생산성본부가 메꿔주고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수십만명이 부족하다고 이야기 되고 있는 정보·IT분야 인재를 주력해서 양성해 나갈 것입니다.”

 생산성본부는 사실 요즘들어 외국계 대형컨설팅회사와 국내 중소컨설팅업체 사이에서 샌드위치 공격을 받고 있다. 특히 속속 진출하고 있는 외국계 컨설팅회사들은 국내 컨설팅 시장을 좌지우지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컨설팅은 2가지가 중요합니다. 선진화된 컨설팅 기법과 컨설팅 대상회사의 속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분명 외국계 컨설팅업체들은 선진화된 컨설팅 기법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우리기업에 맞는 경제성 높은 컨설팅을 제공하는데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도 이제는 외국계 컨설팅업체들의 이러한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외국계 컨설팅업계의 노하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시대 변화에 맞춰 생산성본부는 전문화된 국내외 전문기관들과 제휴해 우리 문화와 실정에 맞는 컨설팅·교육에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생산성본부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히 컨설팅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컨설팅 결과는 조사로 연결되고 그 조사결과는 다시 교육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문제점이 진단되면 해결책이 나와야 하는데 생산성본부는 이런 일련의 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앞만보고 달려온 이 회장은 사실 자녀들과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항상 가슴아프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자녀에 대한 교육관 만큼은 확고했다.

 “1남 3녀를 두고 있는데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 예술가, 기업가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많은 시간을 같이하지는 못했지만 항상 개개인의 장점을 지켜보면서 그 특성을 살려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직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틈날때마다 하고 있습니다.”

 골프가 대중운동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이회장은 아직 골프채도 잡아 본적이 없다. 또 지금까지 체력관리를 위한 별다른 운동도 하지 못했다. 과천청사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그의 체력관리프로그램의 전부였다.

 “특별히 골프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요즘은 혹시 시간이 나면 배워볼까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외국에서는 골프가 일반화돼 있기 때문에 해외 상무관을 거치면서 공무원들도 골프를 접하게 되는데 제가 미국·유럽 상무관으로 가 있었을 때에는 한미간 최대현안인 슈퍼 301조 협상대표를 담당하거나 유럽과의 현안인 한EU 조선협상 수석대표팀을 맡아 너무 시간에 쫒겨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 회장은 유럽 상무관시절 현재 대학교재로도 활용되고 있는 ’유럽통합론’을 저술했다. 유럽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국내에 전하는 것이 상무관으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통합론은 유럽상무관으로 간 94년 2월 24일부터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해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인 97년 8월 귀국전날에 탈고했습니다. 귀국 전날 새벽에 컴퓨터를 끄면서 뭔가 뿌듯함이 느껴졌습니다.”

 이 회장의 좌우명은 ’인화면 만사형통’. 조직이건 가정이건 화합만 이뤄진다면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산자부 공무원들의 하루는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중국 WTO 가입과 올림픽 유치 발표 등이 있는 날에는 사전에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발표하 나자마자 관련 자료와 정책이 보고되고 보도자료를 뿌립니다. 이러다보니 밤을 지새는 날도 수두룩하고 직장과 가정에서 짜증을 낼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저와 같이 일한 후배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훌륭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낼 수있었던 것은 바로 인화라고 생각합니다.”

 생산성본부에 ’인화’를 뿌리내리겠다는 이회장은 ’수석’이라는 꼬리표보다는 ’고향형님’이라는 이미지로 본부식구들과 합심해 광화문의 생산성본부를 대내외적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직장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각오다.

 

 약 력

 

 △49년 경북 안동 출생 △71년 서울대 공과대 졸 △87년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수석 졸(경영학 석사) △72년 제12회 행정고시 수석 △73년 공업진흥청 표준국 표준과 행정사무관 △75년 상공부 행정사무관 △81년 대통령비서실 서기관 △83년 상공부 전자정보공업국 정보기기과장(초대) △88년 주미 한국대사관 상무관 △91년 상공부 총무과장 △93년 상공자원부 전자정보공업국장 △94년 주 EU한국대표부 상무관 △97년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 △99년 산업자원부 차관보 △2000년 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실장 △2001년 산업자원부 차관 △현재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수상

 △84년 대통령 표창

 

 저서

 △97년 유럽통합론」

 

 논문

 △「수퍼 301조 협상의 경험과 교훈」등 다수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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