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5) 사람잡는 로봇-1

 2003년 6월,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그믐 밤.

 검은 헬리콥터 한대가 초저공 비행으로 북한 동해안 지역에 침투한다.

 인적 없는 계곡에 사뿐히 착륙한 헬기의 문이 열리고 작은 로봇들이 기어 나온다.

 헬기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로봇은 산길을 통해 공격목표로 설정한 미사일기지 외곽 야산으로 이동한 뒤 발사준비를 마치고 정렬한 탄도미사일을 겨냥해 고성능 탐지센서를 가동하기 시작한다.

 얼마후 북한군 기지 안의 미사일포대는 미국을 속이기 위한 가짜시설(dummy)이라는 일급첩보가 태평양을 건너 미 국방부로 날아든다.

 부시 대통령은 즉시 북한에 대한 최후통첩 시한을 며칠 늦추고 공군사령관에게 공습목표를 재수정할 것을 지시한다.

 날이 밝자 임무를 마친 로봇은 적지에서 차례로 실종됐지만 누구도 애통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군인이 아니라 군수산업을 살지우는 소모성 무기체계(전투로봇)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요즘 미국이 구상하는 차기전쟁 시나리오(북한·이라크·이란)에선 전투로봇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미 아프간전쟁에서 증명됐지만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기술 우위에 대항할 수 있는 중소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정권들은 주권국가가 아니라 단순한 타격대상에 불과하며 주변국(남한 등)의 반발이나 적들의 전쟁수행의지 따위는 하찮은 주변요소에 불과하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전쟁발발시 미군의 인명피해를 최소화시켜 미국내 정치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아무리 위험한 작전에도 부담없이 투입할 수 있고 어떤 명령도 무조건 수행하며 전사해도 국가에 추가적인 비용부담이 없는 완벽한 군인.

 전투로봇은 미국이 향후 전장에서 필요로 하는 전사로서 이상적 덕목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들 전투로봇은 무인전투기와 정찰헬기, 무인차량 등으로 실용화돼 험준한 아프간계곡에 숨어있던 탈레반전사들을 귀신처럼 찾아 공격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탈레반은 실제 미군은 한번 보지도 못한 채 우박처럼 쏟아지는 폭탄세례에 궤멸했다. 뒤이어 올라온 북부동맹군은 시체 더미만 확인하는 것으로 전투상황 종료다.

 엄청난 전과에 기고만장한 미군 당국은 내년도 국방예산에서 무인화된 로봇무기 개발사업에 1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머지않아 주한미군기지에 각종 전투로봇이 실전 배치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사람잡는 전투로봇이 한반도 북녘땅을 누비는 끔찍한 상황을 피할 묘안은 없는 것일까.

 bailh@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