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전산통합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민은행·우리금융 등 은행권을 중심으로 전산통합 작업이 이뤄지고 있으나 예기치 못했던 문제에 직면, 진통을 겪으면서 은행권 전산통합이 은행 합병의 장애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국민은행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은행 합병이 완료된 후에라도 전산통합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면 향후 은행 경영에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최근 통합사례=최근 전산통합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국민은행과 우리금융그룹 두 곳.
국민은행은 지난해 11월 합병은행 설립을 마친 후 전산통합 절차를 밟고 있다. 이 은행은 2개월여에 걸쳐 진행된 캡제미니언스트영의 컨설팅 결과에 따라 지난 9일 옛 주택은 시스템을 통합시스템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옛 국민은 노조측이 컨설팅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당초 예정대로 올 추석까지 전산통합이 완료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난해 4월 출범한 우리금융그룹도 전산자회사인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을 통해 한빛·평화·광주·경남은행의 전산통합작업을 벌이고 있다.
우선 평화은행의 은행업무가 한빛은행으로 합병됨에 따라 두 전산부문의 통합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오는 설연휴를 기해 시스템통합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우리금융 역시 두 지방은행과의 전산통합을 놓고 적지 않은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해 지방은행측이 전산통합팀 합류를 거부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며 아직 한빛은행을 중심으로 한 전산통합에 대한 지방은행의 반발이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전산통합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일자 최근 합병설이 나돌고 있는 신한·하나·제일·서울은행 등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 이들 은행은 양측의 금융서비스를 통합·지원하는 전산시스템을 얼마나 빨리 구축하는가가 합병의 성패를 결정짓는다고 보고 더욱 전산통합에 신경을 쓰고 있다.
◇과거 통합사례=지난 90년대말 경제위기에 따라 은행권에서도 대규모 조정이 이뤄졌다.
특히 지난 99년에는 옛 상업-한일은행의 합병으로 현재의 한빛은행이 탄생했고 옛 하나-보람은행의 결합으로 현 하나은행이 출범했다. 물론 두 은행의 전산통합 과정에서도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당시 한빛은행은 외부 컨설팅없이 자체적으로 전산통합을 진행했다. 통합시스템을 놓고 여려움을 겪었던 한빛은행은 결국 계정계는 옛 한일은 시스템을, 정보계는 옛 상업은 시스템을 선정하는 절충안을 택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양측 모두 강하게 반발해 신경전이 이어졌다.
하나은행도 합병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이 은행은 당시 앤더슨컨설팅에 의뢰해 통합안을 마련했다. 컨설팅 결과 옛 하나은 시스템을 중심으로 통합한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역시 옛 보람은행측 직원들이 강하게 반발, 실제 통합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무엇이 문제인가=금융권 관계자들은 은행 합병시 전산통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는 필연적이라는 반응이다.
시너지 효과를 위해 비슷한 규모의 은행끼리 합병하다보니 전산조직과 시스템의 수준도 엇비슷해 아무리 공정한 과정을 거쳐 전산통합이 이뤄지더라도 한쪽은 소외된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고용불안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통합과정에서 비주류로 밀려나면 이어지는 조직인사에서도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 노조 차원에서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지적이다.
현재 한빛은행 전산정보본부에 근무하고 있는 옛 한일은행 출신 관계자도 “당시에는 시스템선정에 불만을 제기했으나 지금 되돌아보니 결국 고용불안이 관건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전문가들은 전산통합에 따른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느 시스템이 주 전산시스템으로 선정되고 누가 통합 CIO로 선임되는가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업무 및 조직 통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공정성이 뒷받침되고 양측 직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 합병은행의 전산직원은 “지금까지 통합한 은행의 예를 보면 거의 모든 은행이 전산시스템 선정과 인력의 구조조정은 별개로 진행시켰다”며 “현재 국민은행의 시스템통합 문제 역시 어느 시스템을 선정하느냐와 인력의 고용문제는 별개이므로 이 부문만 갖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인력구조조정의 최소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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