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완의 애니월드>(32)NFBC(캐나다국립영화위원회)의 전략

애니메이션산업이 미래에 발전가능성이 높은 첨단산업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유전공학, 나노공학, 우주공학 등과 함께 한국의 미래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은 국내 애니메이션산업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하는 좋은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애니메이션산업을 육성하는 사회적 시스템으로는 시장지배형 모델과 국가주도형 모델이 있다. 이 중에서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극장용 장편과 TV시리즈 시장으로 양분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를 시장지배형 모델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러시아, 중국, 북한처럼 사회주의국가들은 다양한 사상교육과 이념의 확산을 위해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애니메이션산업을 육성하는 국가주도형 모델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프랑스와 한국은 자국의 애니메이션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TV방영쿼터제를 시행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시장지배형과 국가주도형의 복합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델들 중에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사례가 있다. 국가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으로 애니메이션산업의 양적확산보다는 질적우위를 성공케 함으로써 자국의 애니메이션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게끔 유도한 캐나다의 성공사례가 참고가 될 만하다.

　캐나다국립영화위원회(NFBC, National Film Board of Canada)는 1939년 캐나다의 문화적 정체성을 조기에 확립하자는 국가전략으로 설립된 영상위원회다. 존 그리어슨의 주창으로 설립된 NFBC는 이후 1941년 전설적인 실험애니메이터 노만 맥라랜에 의해 애니메이션스튜디오를 산하에 설립하게 된다. 바로 이 애니메이션스튜디오를 중심으로 현재의 캐나다 애니메이션의 힘이 탄생하게 된다.

　미국처럼 자국의 인디언 문화가 몰락하고, 이민족들로 구성된 캐나다는 특히 불어권 지역의 언어분쟁으로 국민의 결속력이 항상 국가정책의 최우선으로 대두되던 국가였다. 국민의 결속력은 국가정체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결국 국가의 독특한 문화유산의 축적만이 국민의 단합된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단시간에 캐나다 특유의 문화유산을 축적하기 위해 수립된 전략 중의 한 기관이 NFBC이다.

　NFBC는 전세계에 있는 영화감독들과 애니메이터들에게 제안을 했다. 캐나다에 와서 마음껏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구현해 보라고 말이다. 주목받는 영화감독들과 애니메이터가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직접적인 작품활동을 계속한다면, 작업공간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이에 따라 세계 곳곳의 능력있는 영화감독과 애니메이터들이 캐나다로 몰려들기 시작했으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영상들은 캐나다의 문화가 되어 갔다. 60년이 지난 현재, NFBC는 실험애니메이션의 메카가 되어 있으며, 다양한 애니메이션 제작의 실험실 기능을 담당함으로써 매년 새로운 애니메이션 경향의 정보센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상업애니메이션이 시장점유율과 자본력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면, NFBC는 이미 애니메이션의 예술성과 작가주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헤게모니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에 대한 국가정책에는 장기적인 계획을 상대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인내력의 혜안이 필요하다. 캐나다에 비해 우리는 축적된 전통문화가 남부럽지 않은 국가다. 그러한 문화적 역량이 질적우위로 재현되도록 문화정책의 장기적인 비전을 기대한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