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도깨비를 부리는 요술 지팡이
-이문주
나는 보잘 것 없는 중늙은이, 내일 모래면 말로만 듣던 고희를 맞는다. 세월의 흐름을 가슴으로 실감케 하여 준다. IMF가 무엇이 길래 노년층에도 예외는 없는가봅니다. 퇴직 후 특별히 하는 일없이 소일하는 신세가 되어 유유자적하던 중 내가 사는 신도시 평촌에 위치한 안양시청에서 발간하는 월간 ‘우리안양’이라는 소식지를 접할 기회가 있어 책장을 넘기다 보니 시정 계시판에 컴퓨터 무료 교육이란 기사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컴퓨터?…나 같은 늙은이도 컴퓨터를 할 수 있을까?…내가 공부를 하겠다면 남들이 웃지나 않을까? 또 내가 컴퓨터란 복잡한 기계를 다룰 수 있을는지?…’ 내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과 의구심으로 가득 차 망서리기도 했지만 오직 컴맹이란 별명을 벗어버리겠다는 일념으로 용기를 내어 수강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나는 마음을 굳힌 이상 즉시 전화를 걸어 접수를 하였다.
며칠 뒤 소집일에 시청 정보 교육실로 출강을 해서보니 수강생 중에는 나와 같은 연배는 2∼3명에 불과했고 그나마 남자는 2∼3명이 전부고 거의 20∼30대의 젊은 여성들만이 성시를 이룰 뿐이었다. 이윽고 강사님이 오시어 정보교육 기본교재로 ‘정보상식’ ‘한글97’ ‘인터넷’ 등 수권의 소책자를 배부하고 강의에 들어가는데 젊은 아낙네들은 어디서 기초 공부를 마친 듯 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키보드를 치는 솜씨가 여간이 아니었다. 이에 비해 나는 그야말로 초보 중에서도 왕초보인지라 도대체 말 자체도 이해되지 않고 타자도 키보드를 일일이 들여다봐야 칠 수가 있지 않은가. 진도는 물론이려니와 이해하기도 힘겨웠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어쨌든 모르는 것은 질문하고 끝까지 의문점은 알려고 노력했다. 20일이 교육 기간인데 2∼3일 수강하고 나니 내 연배 노인들은 공부가 잘 안되어 결강한 듯 이후로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컴퓨터에 대한 기본상식을 수강하고. 다음은 한글워드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강의를 하는데 자기 ID와 비밀번호로 e메일을 만들고 옆 사람과 메일로 연락을 하도록 강사님이 지시하여 나는 옆에 앉은 새댁과 메일은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운명에 처하게되어 서로 메일을 주고받고 하는 경험도 하게 되니 오랜만의 즐거운 에피소드의 한 자락을 장식하게도 되었다. 어느덧 20일의 강의가 완료되어 졸업축하 파티를 하는데 수강생은 모두 젊은 여인들이고 그중 오직 나 하나만이 남자이며 노인인지라 마치 꽃밭에 고목 나무가 우뚝 선듯 진풍경이 연상되기도 하였다. 그래도 젊은 수강생들은 다같이 건배를 부르며 노익장이라고 나를 칭찬하며 축하해주었다.
그러던 차에 하루는 나의 친구 백운이 나와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컴퓨터를 배워보지 않을 테냐고 물어오면서 ‘인터넷 집현전’이란 노인들의 정보교육을 보급하는 모임이 있으니 한번 월례회에 참석하여 취지를 이해하고 가입하자고 권해왔다. 나는 드디어 2000년 7월 27일 백운과 함께 ‘인터넷 집현전’에 절차를 밟고 입회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수적으로 컴퓨터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으니 해보라며 의향을 물어와 ‘나 같은 노인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으랴?’하는 마음에서 쾌히 동참하게 되었다. 컴퓨터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형편에 마음 한구석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쉬운 마음에서 강행하게 되어 8월 7일 ‘시스월’이란 정보회사에 입사수속을 끝내고 고서정리에 관한 간단한 설명과 교육을 받고 CD에 담긴 재택근무 자료를 받아와서 그야말로 역사적인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후 나는 컴퓨터도 배우며 수입도 잡고 꿩 먹고 알 먹는 옛 속담을 현실화하는 신바람 나는 역군이 되었다. 컴퓨터로 일하면서 시간 있는 대로 능숙하지는 못할망정 인터넷으로 ‘집현전’ 모임의 소식을 홈페이지를 통하여 언제든지 빠르게 접할 수 있어 편리함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더욱이 집현전에서 실시하는 노인정보화교육에 참여하여 ‘홈페이지 만들기 교육’ ‘검색 교육’ ‘외국어 번역교육’ 등등 다양한 종류의 컴퓨터 교육을 내 마음에 흡족하게 받고 부족한 점이 있을 때는 서로 도와서 알 수 있을 때까지 모임을 통해 완전 파악할 수가 있어 더욱 만족스러웠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회원간에 메일도 보내고 요즘말로 뽕짝하면 뽕짝, 팝송하면 팝송, 가곡하면 가곡을 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상대방에 메일로 보내서 감상도 하고 위로도 하며 때로는 각 회원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집안 ‘인테리어’ 상태를 살펴보고 배우기도 하고 방문 인사와 칭찬도 하며 인터넷을 통하여 아름다운 그림이며 음악을 메일로 주고받는 정 넘치는 즐거움과 서로 초면일지라도 메일이 오가면 마음도 통하고 인정과 우정이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으리라.
누구나 사회생활 하는 중에 의문 나는 점이 있을진대 이러한 환경에 처했을
때 그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나위 없다. 이때 나는 서슴없이 컴퓨터를 켜고 검색을 한다. 수분만에 의문을 풀어주는 컴퓨터가 바로 스승이요 도깨비도 도망갈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일전에 집현전 검색교육장에서 ‘김대중 대통령께서 남북 영수회담 때 백화원초대소에서 점심식사시에 드신 국밥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있을 때 이를 검색하여 ‘평양냉면’이란 사실도 찾아낼 수가 있었다. 또 나는 수도권이라서 전철을 자주 이용한다. 그때마다 인터넷을 통하여 서울 지하철에 들어가서 출발역 범계, 도착역 노원을 써넣고 최단거리를 클릭 하면 단 1초도 안 걸려서 소요시간을 알려준다.
요즈음 내 친구 중에 혹시 소식도 없이 이사를 하거나 주소지를 옮기는 예가 간혹 있다. 이런 경우 내가 컴퓨터를 모르면 얼마나 답답하랴. 이런 때면 서슴없이 hanmir.com에 들어가 이름을 써넣고 엔터를 치면 즉시 주소지를 알려준다. 나는 내 열 손가락이 키보드를 쳐서 ‘여기 한 폭의 그림을 대령시켜라’라고 명령만 내리면 마치 도깨비가 내 앞에서 명령에 복종이나 하는 듯이 즉시 모니터 위에 아름다운 그림 한 폭을 대령시키니 그 얼마나 신기한 노릇인가!.
신문을 읽고 싶을 때 어떤 신문이든 간에 읽고 싶은 대로 불러서 읽고 먼 나라 외국의 신문도 즉시 대령하라면 모니터 위에 즉시 대령시킨다. TV도 마찬가지로 국내 방송뿐 아니라 외국 방송도 보고싶으면 언제라도 볼 수 있고 백과사전을 비치할 필요도 없이 컴퓨터가 해결해준다. 어찌 그뿐이랴. 홈뱅킹, 홈쇼핑, 항공권, 기차 등의 승차권 영화 관람권까지도 무엇이든 집에 앉아서 해결할 수가 있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나는 늦게라도 컴퓨터를 배운 것을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
전국에 계신 노인 여러분! 오늘부터라도 당장 댁에서 가까운 곳에 컴퓨터를 무료로 가르쳐주는 정부기관이 있고. 인터넷 집현전에서 컴퓨터 무료 교육을 노인을 위해 실시하고 있으니 서슴지 마시고 동참하시어 수강하시기 바랍니다. 각 아파트의 노인정이나 공원에 가보면 노인들이 모여 ‘고스톱’이란 화투놀이에 몰두하여 급기야는 의견 충돌이 생겨 서로 다투기까지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결국 젊은이들 또는 자라나는 손자 손녀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컴퓨터를 하면 자식들은 물론 손자 손녀도 “우리 할아버지도 컴퓨터 하신다”라고 할아버지를 하찮은 노인으로부터 한층 승격시켜 우러러 볼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치고 마우스를 운전하는 것은 결국 뇌의 활동을 촉진시키고 손가락 끝을 예민하게 운동시켜 주므로 노인들에게 찾아올 수 있는 무서운 치매를 물리칠 수 있다고도 합니다.
나는 할아버지고 집안에 어른이니 ‘에헴’하는 구태의연한 사고 방식은 당장 떨쳐 버리시고 늦지 안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주저 마시고 컴퓨터를 열심히 배우시어 신바람 나는 세상을 음미하시고 흥미도 누리시고 건강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나의 계획은 보다 고급 수준의 컴퓨터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쉬지 않고 빠르게 발전하는 이 사회의 정보화에 뒤지지 않도록 꾸준히 노력하여 나보다 뒤떨어진 노인들의 정보화를 위하여 다소나마 보탬이 될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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