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실리콘밸리의 힘

 아시아 기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반도체 업체 탐방 프로그램(asiapress electronics)에 참여하기 위해 도착한 실리콘밸리는 곳곳에서 경기침체의 흔적이 묻어 났다. 우선 집을 싸게 빌려준다는 안내문이 유난히 많다. 2년 전만 해도 2000 달러가 넘던 월세가 현재는 절반도 안되는 곳이 수두룩하고 그나마 수요가 없어 구매자를 연결시켜 주면 성과급으로 자동차를 주기도 한단다. 대금을 제 때 받지 못 한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았고 벤처캐피털의 움직임도 크게 위축됐다.

 그러나 본격적인 업체 방문이 시작되면서 들여다본 실리콘밸리는 달랐다. 이번에 방문하는 업체는 모두 13곳. 그나마 만족스러운 한해를 보내고 있는 업체도 있고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 업체들도 있다. 공통점은 하나 같이 자신감에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침울한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다.

 모두들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확신은 숨기지 않았다. 업체마다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사람의 힘’, 즉 맨 파워에 대한 믿음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구조조정을 위해 불필요한 소비는 과감히 삭감하지만 사람에 대한 투자는 결코 줄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불안정한 분위기 속에서도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성과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직원이 다른 우수한 인력을 데려오면 인센티브를 주는 등 우수 인력을 보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젊은 엔지니어들의 열의 또한 대단하다. 리니어 테크놀러지에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된 앨버트는 “누구나 자금유치를 쉽게 할 수 있었던 때가 더 문제 아니었느냐”고 반문하면서 “지금이야 말로 경쟁력 있는 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시기”라고 확신했다. 그는 또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확실한 대우를 해줄 뿐 아니라 행여 회사가 망해도 우수한 엔지니어는 실리콘밸리 어디에서든 재활용되기 때문에 마음놓고 연구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악의 경기침체 상황 속에서도 사람을 중시하는 기업과 이에 부응하는 엔지니어들이 함께 희망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실리콘밸리를 보면서 혹 우리 기업과 종사자들 중에 눈앞의 이익만을 좇다가 미래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산업전자부·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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