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경기 회복론이 일고 있다. IT 핵심분야인 반도체 현물가격이 최근 연일 상승하면서 ‘IT경기 바닥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예전에도 반도체 가격이나 주가가 상승할 때마다 바닥론이 힘을 얻었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본격적인 IT경기 회복시점에 대해선 이견을 보이는 전문가들도 ‘IT경기가 바닥에 근접했다’는 바닥론에는 대체적으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 IT불황을 촉발시켰던 공급과잉 문제가 해소될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임홍빈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가격상승은 수요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회복이 최대 관건=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반도체 경기가 소생기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반도체 현물가격(128MD램)이 4일 연속 오르면서 1달러 수준을 회복하는 등 반도체경기 회복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단일품목으로는 가장 수출비중이 높은 반도체 경기회복은 국내 IT산업 회복의 ‘전주곡’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주식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하고 있다. 반도체주 매도로 일관했던 외국인들이 연일 삼성전자 ‘사자’를 외치며 가격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반도체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에 대비해 미리 주식을 사두는 것이다. 민후식 한국투자신탁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경기가 바닥권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반도체 수요량이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여 가격도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매수의 주된 이유는 현물가격이 저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의 3주체인 반도체업체, PC업체, 유통업체 등이 반도체가격 저점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12일 반도체 현물가격은 지난주에 이어 14% 가량 상승한 1달러 37센트를 기록했다. 임홍빈 삼성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선도업체들이 PC업체에 추가하락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전달했다”며 “PC업체들도 반도체업체의 요구를 수용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관련업계서도 최근 PC 등의 수요증가로 반도체 가격하락을 촉발했던 공급과잉 문제가 서서히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반도체가격의 상승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최근 반도체가격의 상승이 수급상황에 따른 본격적인 반등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계절적인 특수와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감산, 가격메리트를 노린 유통업체의 매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일시적인 반등이라는 주장이다. 우동제 현대증권 연구원은 “이번 반도체 가격상승은 연말 PC특수를 앞두고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며 “반도체 경기회복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부품·유통 회복 기대감 높아=일반부품이나 유통분야는 반도체보다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IT경기의 선행지표에 해당하는 이들 분야의 선전은 IT산업 회복의 긍정적인 시그널로 해석된다.
평판디스플레이의 간판주자인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는 하락하던 가격이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불황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8월 이후 가격하락으로 고전했던 15인치 모니터용 TFT LCD가 이달들어 처음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200달러에 거래되던 15.1인치 TFT LCD가 이달들어 한국과 일본산은 205∼215달러로, 대만 제품은 205∼210달러 정도로 평균 5% 안팎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TFT LCD가 수요증가속에 가격회복세를 보이면서 드라이버IC, 백라이트유닛 등 관련 부품수요도 늘어날 전망이다. 벌써부터 생산라인을 풀가동하며 수요증가에 대비하는 업체도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TV 등 고가 디지털가전용 부품수요도 살아나고 있다. 관련업계는 윈도XP, 휴대폰, 디지털가전 등 첨단 전자제품의 수출 및 내수 증가추세로 내년부터 국내 전자부품 경기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자유통시장의 경우 수요가 살아나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다. 전자양판점인 하이마트와 전자랜드21은 지난 10월부터 디지털가전, 난방용품, 김치냉장고 등의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하이마트와 전자랜드21은 지난달 매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8%, 25% 가량 늘어났다.
시스템통합(SI)업계도 최근 대형 프로젝트가 이어지면서 일단 한고비를 넘기는 분위기다. 하반기들어 매달 국방, 철도, 전력 등 공공분야에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가 나오면서 상반기 수요감소로 고전했던 SI업계의 숨통을 터주고 있다.
◇당분간 업체간 양극화현상 나타날 듯=전문가들은 최근 “IT경기가 바닥권으로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본격적인 회복에 대해선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IT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기 전까지는 업체 및 업종간 양극화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한다. 먼저 시장점유율, 수익, 마케팅 등 시장지배력이 높은 업체들은 발빠른 회복세를 보일 공산이 크지만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불황탈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투자신탁증권은 이제부터 △시장점유율 선도업체 △재무구조 우량업체 △구조조정 완료나 막바지 업체 등이 부각될 것이라며 삼성전자, 삼성전기, KEC, LG전자, 태산LCD, 휴맥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IT경기 회복은 내년 상반기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IT산업이 9·11 테러사태 이후 소비심리 위축으로 경기부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감에서 벗어나 바닥권을 확인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김동준 굿모닝증권 연구원은 “국내외에서 최근 IT경기 회복논쟁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며 “비관적인 전망 일색였던 종전보다는 회복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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