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좋은 개살구.’ 리눅스업계에서 정부의 리눅스 지원정책을 평가하는 단어다. 정부는 지난 99년 8월 이후 리눅스 지원정책을 계속 발표했지만 리눅스업계에서는 정부의 리눅스 지원의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정부가 리눅스 지원정책을 발표했지만 실제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의 리눅스 도입은 답보상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간기업의 리눅스 도입이 활성화되는 것과 크게 대조되는 것이다. 최근 리눅스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민간기업에서도 기간시스템에 리눅스를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한항공의 운항관리시스템이나 포스코의 리눅스 슈퍼컴퓨터 도입, 두루넷의 인증시스템 구축 등이 좋은 사례다.
◇정부가 리눅스 도입 더 꺼려=지금까지 정부가 밝힌 리눅스 지원책은 표준화, 기반기술 개발, 보급활성화, 홍보 및 교육 등 4가지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리눅스 보급활성화로 공공기관이 오히려 리눅스 도입을 꺼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공부문은 소규모 웹서버나 메일서버조차도 리눅스 도입을 망설이고 있으며 기간시스템에서는 아예 리눅스를 배제하고 발주하는 경우가 많다.
건교부의 토지관리정보체계 구축사업과 정통부의 집배원용 PDA 보급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건교부 관계자는 토지관리정보용 시스템으로 윈도NT서버를 한정지은 이유를 “현재 전산시스템을 서버·미들웨어·클라이언트 등 3계층 방식의 개방형 시스템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국산주전산기를 구매할 경우 별도의 윈도NT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리눅스 업계에서는 “국산 리눅스서버를 주전산기로 사용해도 성능이나 기능상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별도로 윈도NT서버를 구입해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한 것은 리눅스 시스템과 더 나아가서는 국산 제품을 차별하는 조치”라고 반박했다.
현재 건교부는 이러한 업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입찰사양의 재점검에 들어갔다. 리눅스협의회도 건교부의 조치에 즉각 이의를 제기하고 기술평가단을 자체 조직해 객관적인 리눅스서버의 성능을 건교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통부의 집배원용 PDA 보급사업도 마찬가지다. 정통부는 집배원용 PDA를 윈도CE4.0 기반의 제품으로 지정했다. 정통부 관계자는 리눅스가 배제된 이유에 대해 “리눅스 PDA는 아직 출시사례가 없어 채택하기에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임베디드 리눅스업체의 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PDA용 운용체계는 윈도CE가 아니라 포켓PC”라며 “윈도CE 4.0은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운용체계로 시장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리눅스와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또 “집배원용 PDA는 필요한 기능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고가의 윈도CE 기반 PDA를 선택하는 것은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예산절감보다 뒤탈 없어야=리눅스업계에서는 공공 프로젝트에서 리눅스가 소외되는 이유에 대해 ‘공공기관 특유의 보수성’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뒤탈 없이 중간만 하면 된다’는 공무원의 복지부동 자세가 기존에 사용하던 시스템을 고집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특히 ‘받은 예산은 다 써야 내년 예산을 제대로 받는다’는 관행 때문에 리눅스를 도입해 얻을 수 있는 예산절감 효과를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또 최근 경기가 악화되면서 5억원 안팎의 소규모 공공 프로젝트에 외산 업체들이 뛰어들면서 불공정경쟁이 펼쳐지는 것도 공공기관 리눅스 도입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모 리눅스업체의 대표는 “외산 업체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입찰공고가 나기 전부터 물밑작업으로 수주를 따는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이 활개를 치면서 국내 리눅스업체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기관이 리눅스로 시스템을 구축해도 하자가 없는 프로젝트에 리눅스를 배제하면서 리눅스업계에서는 정부의 리눅스 지원정책을 ‘양치기 소년의 외침’ 정도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리눅스업계에서는 이러한 악조건을 반전시킬 수 있는 조건을 “공공기관의 인식변화와 리눅스업계의 공동대응”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위해 리눅스협의회는 우선 우수 리눅스 보급사례를 책자로 만들어 배포할 계획이다.
리눅스협의회는 내년 사업계획의 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리눅스협의회는 공공기관의 리눅스 이용실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하고 리눅스포럼 구성을 통한 표준화작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또 공공기관에서 리눅스에 대한 신뢰도를 가질 수 있도록 행정업무용 리눅스 소프트웨어 발굴을 위한 공모전도 추진하기로 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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