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둔 중국이 파격적인 반도체 시장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거대한 중국 시장을 노리는 국내 반도체업체에는 이번 중국의 개방정책이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얼마나 효율적인 장단기 진출 전략을 수립하느냐가 국내 반도체업체의 해외 진출 성공 여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가전 등 전자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장악한 상태다. 중국은 이를 디딤돌로 삼아 반도체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기술유치에 적극적이다.
우리 업체들에도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면서 기술이전이나 합작설립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는 고부가가치산업으로 기술이전이나 합작설립을 쉽게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당연히 심사숙고해 득실을 따져봐야 할 일이다.
지금 세계 반도체업체들은 반도체 가격이 원가 이하로 떨어져 너나 할 것 없이 현상유지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욱이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설비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은 이런 현상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 푸둥 촹톈지구는 마치 ‘아파트를 짓듯’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이 한창이라는 게 본지 기자의 현지 보도다. 세계 반도체 경기는 지금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중국 반도체업체들의 올해 공장가동률이 90%에 달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산업 육성 의지나 열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중국은 이런 반도체산업 육성 의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장비나 제조 핵심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것이 최대 취약점이자 걸림돌이다. 이 바람에 중국은 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면서도 핵심부품인 반도체는 전체의 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못하면 중국은 앞으로 고부가가치인 정보기술(IT) 분야를 고도화하는 데 치명타를 맞게 될 수 있다. 중국은 이런 절박감에서 한국과 세계 반도체업체에 대해 합작사 설립이나 기술이전을 요청하면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장비 제조기술과 반도체 생산기술에서 중국보다 10년 정도 앞서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IMF체제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올해는 수출부진과 극심한 경기침체로 경제적인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내수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그중에서 중국을 공략 1순위로 꼽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의 비메모리 분야 중국공장 매각을 둘러싼 논의도 진행 중이다.
국내 반도체업체들은 중국의 파격적인 기술이전 및 합작설립 등 반도체 개방정책에 따른 조건 제시에 대해 심사숙고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자칫 단기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대처는 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우선 국내 업체들은 중국보다 기술적인 우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반도체 가격폭락으로 경영상 어려움이 있더라도 미래에 대비해 지속적인 신기술 개발과 기술집약적인 제품 생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또 중국 시장에 막연한 기대감만 갖고 조급하게 진출해서는 안된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현지 산업정책이나 문화 및 노사관의 차이, 조세정책 등 경영 전반에 관한 내용을 파악해 사안별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중국에 진출한 국내 업체간에 과당경쟁을 벌이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제살깎아먹기식의 마케팅을 펼치면 한국 기업이 공멸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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