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Technology is Nothing”

Photo Image
이종욱 관세청장

1994년 스티브 잡스는 롤링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기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향한 믿음입니다. 그들에게 도구를 쥐어준다면, 그들은 그 도구로 놀라운 일들을 해낼 것입니다.” 훗날 팀 쿡도 같은 맥락에서 “기술은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지만, 무엇을 원하는지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두 사람의 말은 기술의 진정한 가치란 기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목적과 이를 실현할 역량이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렇다면 관세행정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최근 관세행정의 업무 범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고, 그 양상은 훨씬 복잡해졌다.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연간 약 1억9000만건에 달하는 직구 물품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이를 틈타 마약, 총기류 등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물품을 반입하려는 시도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불법 물품을 합법 물품으로 위장하거나 복잡한 우회 경로를 활용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한정된 행정 인력만으로는 모든 위험 요소를 정밀하게 가려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관세청에 AI를 도입하는 것은 이러한 물리적 한계를 넘어 관세국경을 수호하고, 불법무역행위에 엄정하게 대응하며, 국민과 기업이 체감하는 편리한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그러나 목적이 분명하다고 해서 AI 전환의 성과가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 도입 과정에서 늘 경계해야 할 것은 이른바 '은탄환 신드롬(Silver Bullet Syndrome)'이다. 은탄환 신드롬은 전설 속에서 늑대인간을 단 한 발에 쓰러뜨리는 은탄환처럼, 기존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단숨에 해결해 줄 만능 기술이 존재한다고 믿는 착각을 뜻한다. 이러한 인식은 기술 도입의 속도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정작 필요한 데이터 품질 관리, 업무 재설계, 인재 양성 같은 기반을 소홀히 하게 만든다. AI는 어디까지나 관세행정의 판단과 집행을 보조하는 도구다. 그 효과는 도구 자체가 아니라, 도구를 활용하는 사람의 역량과 목적의식에 달려있다.

관세청은 AI 대전환이 조직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까지 함께 바꾸는 행정 혁신의 과정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명확한 이정표와 실행 기반을 갖추는 데 역량을 집중해 왔다. 지난 6월 관세청이 'AI 정부 발전 유공'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AI 대전환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대외적으로 인정받은 결과다. 실제로 관세청은 자체 개발한 AI 모델을 활용해 마약 15㎏, 부당 특혜관세 4억5000만원을 적발하는 등 실질적 성과를 창출해 왔다. 이러한 성과는 단편적인 AI 모델 구축을 넘어, AI를 근본적으로 관세행정에 내재화하기 위한 토대를 차근차근 다져온 데서 나왔다.

Photo Image

첫째, 조직과 기술의 융합이다. 지난해 9월 '인공지능(AI)으로 공정성장을 선도하는 관세청'이라는 신 비전을 수립한 이후, AI 대전환을 위한 조직적·기술적 기반을 정비했다. 기존에 구축한 우범 화물·여행자 선별 등 11개 AI 모델을 통합 관리하고 새로운 과제를 발굴할 '인공지능 혁신팀'과 양질의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확보·관리할 '데이터담당관'을 신설했다. 이와 함께 '관세행정 현장 맞춤형 기술개발(R&D) 2.0' 사업을 통해 마약류 탐지를 위한 전자코 등 차세대 기술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세관 직원과 연구 전문가가 개발 전 단계에 참여하도록 해, 현장의 필요에 따라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일선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둘째, 업무 중심의 장기적인 전환 설계다. 관세청은 올해 초 '인공지능 정보화전략계획(AI ISP)' 수립 사업에 착수했다. 이는 신기술의 유행을 맹목적으로 좇는 대신, 실제 통관과 관세조사, 수사 등 관세행정의 핵심 업무에 AI를 유기적으로 접목하는 방식을 구체화하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 본청과 전국 세관을 아우르는 소통 채널을 구축하고 실무 현장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기술의 수준이 아무리 높더라도, 실제 업무 흐름과 결합하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혁신으로 이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현장 중심의 인재 양성이다. 도구를 쥐고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관세청은 2017년부터 빅데이터 분석 및 AI 알고리즘 개발이 가능한 전문 인력을 꾸준히 양성해 왔으며, 올해 초 전국 세관에서 이들을 중심으로 50여명의 'AI 분석관'을 선발했다. 이들은 탁상공론식 기술 도입을 배제하고, 일선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AI 기술과 결합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장의 애로사항과 인력 부족에 따른 한계를 업무 특성에 따라 어떤 AI 기술로, 어떤 방식으로 보완할 수 있을지 찾아내는 것이다. 이들의 고민과 해법은 최적화된 AI 업무 체계를 구현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능동적 혁신 문화의 조성이다. 새로운 기술은 시스템만으로 정착되지 않는다. 직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발굴하고, 실험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문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관세청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적극적 실행으로 업무 혁신을 이끌어낸 직원에게 실질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정당한 보상은 직원들이 주도적으로 혁신 문화를 일으켜 도전 의식을 조직 전반에 확산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Technology is Nothing.”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AI라는 기술 그 자체는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해 줄 마법의 은탄환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이 강력한 기술이 관세청 구성원들의 치열한 고민과 확고한 목표 의식과 만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불법 식의약품을 국경 단계에서 차단하고, 아이들을 마약으로부터 지켜내며, 국가 경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행정력으로 발휘될 것이다. 앞으로도 관세청은 기술의 화려한 겉모습에 매몰되지 않고, 국민 안전과 국가 경제 수호를 위해 AI를 가장 지혜롭게 활용하는 조직으로 끊임없이 진화해 나갈 것이다.

이종욱 관세청장 jong3434@korea.kr

〈필자〉1974년 생인 경북 상주 출신으로 김천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 43회로 공직에 입문해 관세청 인사관리담당관, 심사국장, 통관국장, 기획조정관, 조사국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지난해 10월 관세청 차장으로 발탁됐고 지난 5월 15일 제35대 관세청장으로 임명됐다. 조사국장 시절 마약 밀수와 불법 외환거래 척결에 두드러진 실적을 거뒀고, 기획조정관으로 재직하면서 조직 운영 전반을 손질해 업무 효율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을 갖춰 후배들의 신망이 두텁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