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택 교수의 D-엣지]AI 시대, 진짜 경쟁은 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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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둘러싼 세계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진짜 경쟁은 기술 자체가 아니다. 미래 산업에 누가 더 먼저, 더 오래, 더 과감하게 투자하느냐의 경쟁이다. 기술은 개발할 수 있지만, 투자 생태계는 단번에 만들 수 없다.

산업혁명의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기술이었지만, 그 기술을 성장으로 연결한 것은 자본과 투자의 힘이었다. 실리콘밸리의성공 사례인 페이팔을 보자. 사람들은 페이팔을 온라인 결제기업으로 기억하지만, 페이팔의 진정한 의미는 그 이후였다. 페이팔 마피아로 불리는 창업자와 핵심 인력들은 미래 기업을 창업하거나 투자자로 변신하며 혁신 생태계를 만들었다. 스페이스X와 팔란티어, 링크드인, 유튜브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 생태계에서 탄생하거나 성장했다.

주목할 점은 혁신의 출발점이 기술보다는 투자였다는 사실이다. 초기의 페이팔도 성공이 보장된 기업이 아니었다. 그러나 벤처캐피털과 엔젤투자자들은 미래 가능성에 자본을 투자했고, 그 자본은 기업을 키웠으며, 기업은 다시 새로운 기업에 투자하는 선순환을 만들어 냈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싱가포르의 테마섹은 국가의 장기 성장전략을 뒷받침하는 투자 플랫폼이다. 프랑스의 국책 공공투자은행인 비피프랑스는 스타트업과 전략산업을 연결하는 정책금융의 중심축이며, 이스라엘은 요즈마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적인 벤처 강국으로 도약했다.

미국은 어떤가.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과 연기금,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연방정부의 전략 투자가 서로 맞물리며 세계 최대의 혁신 기반을 구축해 왔다. 미국은 막대한 국가부채와 글로벌 기업을 보유했음에도 지금도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과 차세대 에너지 등 AI 인프라에 천문학적인 추가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AI는 반도체와 전력, 제조업과 금융, 국방과 행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새로운 국가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투자하는 대상은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과 산업 주도권이다.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와 첨단 제조역량을 갖춘 한국은 AI 시대에 충분한 경쟁력을 가진 나라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성장의 마지막 퍼즐은 장기 자본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적절한 시기에 투자받지 못하면 시장을 선점하기 어렵고, 다른 나라의 자본과 생태계 속에서 성장할 수밖에 없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정부는 국민성장펀드를 비롯해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미래 산업을 국가 성장전략의 중심에 놓고 있다. 미래 산업을 장기 자본과 전략 투자로 키우겠다는 정책 방향 전환이 본격화된 것이다. 남은 과제는 이러한 투자 흐름이 지역의 첨단산업과 혁신기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지방정부의 역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첨단산업은 연구개발과 인재, 대학과 기업, 벤처캐피털과 금융, 장기 자본이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성장 기반이 완성된다. 첨단산업일수록 산업정책과 투자정책은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돼야 한다. 지방정부도 이젠 지역의 전략산업과 성장자본의 연결자가 돼야 한다. 그렇게 형성된 투자 구조는 혁신기업을 키우고, 혁신기업은 다시 지역의 일자리와 산업을 성장시키며 주민이 그 성과를 체감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페이팔은 하나의 기업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많은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낳으며 거대한 혁신 생태계를 만들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런 기업을 끊임없이 탄생시키는 투자의 선순환이다. 세계적인 기업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미래를 믿고 먼저 투자한 자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향후 30년, 100년 뒤 한국을 대표할 기업도 오늘 어떤 기업의 가능성을 먼저 믿고 투자했느냐에서 시작될 것이다.

송민택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pascalsong@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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