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술에 목마른 중국

사진; 상하이베링유한공사는 생산시설을 지금의 두배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푸둥단지에 0.25미크론 200㎜ 공장을 신설중이다. 조하경단지에 있는 상하이베링의 100㎜ 가공공장 내부.

 지난 1일 점심께 국내 29개 반도체 장비·재료, 부품 업체 대표들이 푸둥 인근의 골프클럽하우스에 모였다. 골프를 치기 위해 모인 게 아니다. 이 지역투자 유치 전담기관인 창장(長江)하이테크파크에서 마련한 환영 오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창장하이테크파크의 다이하이보 총경리는 거한 오찬을 베풀면서까지 한국기업의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지금도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과실송금 규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중국의 WTO 가입으로 더욱 투명해질 것입니다.”

 상하이시 정부는 푸둥 산업단지에 반도체 같은 외국의 첨단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파격적인 투자조건을 내세우는 것도 모자라 이 지역내 반도체와 정보통신 전공 대학생을 연간 4000명 이상을 배출하는 등 인력양성에도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

 언어 문제가 걸리자 단지내 영어전문학원을 세워 교육도 시키며 아예 푸둥산업단지 전체를 영어 공용화 지역으로 만들려고까지 한다.

 ◇반도체 기술에 목마른 중국=중국은 가전을 비롯한 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평정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일본과 한국산 전자제품보다 많이 팔리는 게 중국산 전자제품이다.

 그런데 중국은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무려 80%나 수입해 쓴다. 국산도 자국 업체의 부품보다는 다국적 업체나 중국에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반도체 기술의 취약은 전자제품 경쟁력에도 영향을 주지만 통신과 같이 부가가치가 높고 첨단인 정보기술(IT) 분야로 산업구조를 고도화하는 데 치명적이다.

 중국이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 반도체 분야에 대해선 파격적인 개방정책을 펼치는 것도 초기엔 합작 형태로라도 반도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다.

 기술 도입에 목말라 있는 것은 중국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한 반도체 장비 회사는 이번 한중교류회에서 만난 한국업체에 중국에 합작사를 세운다면 자사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는 자기 회사지분의 51%를 줄테니 기술만 이전해달라는 업체도 있었다.

 ◇왜 한국기업인가=한국의 장비 제조기술 및 반도체 생산기술은 중국보다 수년에서 10여년이 앞서 있다. 중국 업체들도 이를 인정한다. 그래도 미국이나 일본, 대만도 있는데 왜 한국업체에 파격적인 제안을 앞세워 기술이전을 요구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나 일본의 업체에 비해 한국업체를 상대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업체는 지난 IMF체제와 올해의 경기침체 상황을 겪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 또 내수시장 부진을 탈피하기 위해 한국업체들이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고 그중 중국을 공략 1순위로 꼽고 있다는 것을 중국업체들은 잘 알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업체들은 막강한 경제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시장에 진출, 반도체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장비시장을 보면 해외 선진업체들은 확실한 중국내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기업은 이제 막 시작단계다. 중국업체의 눈으로 보면 선진국가 업체들보다는 중국시장 진출에 목말라 하는 한국 업체를 파트너로 삼기가 쉽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중국반도체행업협회의 반응이다. 중국반도체행업협회는 우리나라 반도체산업협회가 반도체산업교류행사를 갖자고 제안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반도체산업협회로부터 내년 1월에 비슷한 행사를 열자는 제안은 거절했다.

 한국은 대등한 입장에서 교류할 여지가 충분하지만 중국시장을 꿰고 있는 미국과 만나봤자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한국 업체들은 지분 51%와 기술을 맞바꾸자는 중국업체의 파격적인 제안에도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중국 업체로부터 ‘우리는 충분한 돈이 있으니 당신은 기술만 제공하면 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용없이 중국 업체의 절대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더할 나위없이 좋은 조건이지만 당장이 아닌 나중을 생각하면 불안해진다. 기술을 이전한 후 중국업체가 엄청난 액수로 수차례 증자를 실시하면 이를 따라갈 수 없는 국내 벤처기업은 지분율 저하로 결국 경영권 방어가 불가능해진다.

 기술이전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도 문제다. 5, 6년 기술격차를 보이는 중국업체에 최고급기술을 제외한 나머지 기술을 이전하더라도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단시일내에 기술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정부차원의 세제혜택, 풍부한 자본 및 인력 등이 그것이다.

 김중조 성원에드워드 대표는 “칭다오(靑島)에서 인천까지 20pt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비용은 600달러 정도지만 일본에서 부산항을 통해 인천공단까지의 화물운송비는 3, 4배가 더 든다”며 “무역교류뿐 아니라 교통적인 측면을 고려해도 중국이 우리나라 최대의 교역국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중국진출에 따른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하우를 축적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말한다.

 중국 메모리 유통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면서 성공사례로 평가되는 하이닉스반도체의 윤영찬 상하이지사장도 “중국을 막연히 거대시장으로 인식하고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진출할 경우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며 “자본력이 미약한 국내 중소벤처업체가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국내 동종업체간 경쟁의식을 버리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상하이=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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