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티그룹 회장과 백악관 경제정책자문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월터 리스톤은 경기둔화기의 경영전략으로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경제환경이 디지털화되면서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재고관리와 매출채권 확보, 현금흐름 위주의 경영 등 기초 재무관리부터 철저히 하란 지적이다.
최근 국내 기업환경을 보면 월터 리스톤의 이야기는 정곡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다. 재고를 적절히 관리하지 못해 자금난에 직면하고 쓰러지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적절한 재고관리와 현금흐름 중심의 경영으로 불황을 꿋꿋이 극복해나가는 기업도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PC업체인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회장은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에게 직접 PC를 판매한 것도 유명하지만 개인별로 특화된 PC를 만들어주는 ‘맞춤PC’를 통해 재고감축에 성공, 동종업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소비자들의 주문에 따라 부품을 구입하고 생산함으로써 PC 제조업체의 골칫거리였던 부품 재고보유율을 한자릿수 수준으로 대폭 낮췄고 수익성도 높였다. 델 회장은 이를 일컬어 재고량을 줄이는 대신 그에 비례해 마진은 커진다는 의미에서 ‘이익 풀’(profit fool)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재고를 줄일 수 있을까.
일본과 미국의 자동차 업계 사례를 살펴보면 해답의 일면을 얻을 수 있다. 자동차 업계를 중심으로 퍼진 ‘JIT(Just In Time)’다. JIT는 완제품을 만들 만큼의 원자재를 그때 그때 조달해 재고를 최소화하는 전략이다.
JIT를 구현하는 방안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구매분야를 전문업체에 위임하는 아웃소싱과 연관업체들을 협력업체로 묶어 제조업체 주변에 위치하도록 하는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은 JIT를 위해 자사 내부에 부품 업체들의 부품창고(웨어하우스)를 두거나 공장 주변에 부품 공급기지를 두도록 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해도 안정적인 생산을 위한 최소한의 재고인 안전재고(safety stock)는 필요하지만 고객서비스를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JIT를 보다 확실하게 수행하려면 시스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사적자원관리(ERP)라든지, 공급망관리(SCM)를 갖추고 고객관계관리(CRM) 등과 연계한다면 재고관리를 최적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제조업체에 있어 적절한 재고관리는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요인이 되며,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다.
특히 유통업계의 경우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가격구조가 공개돼 적정 이윤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짐에 따라 재고관리에 실패할 경우 ‘앞으로 남고 뒤로 까지는’ 속빈강정식 경영이 되기 십상이다. 이에 따라 최근 들어서는 제조업계뿐만 아니라 유통분야에서도 재고관리를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재고관리시스템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싼값에 많이 확보해 두었다가 비싼 값에 판매하는 ‘매점매석’식의 판매기법이나 항상 창고에 재고를 확보해두고 판매하는 ‘스톡 세일’이 유통의 주류를 이뤘지만 신경제 체제에 들어서는 무점포에 무재고를 표방하는 디지털 유통이 주목을 받고 있다. 디지털유통은 리얼타임 재고파악과 온라인 유통을 가능케 해 상인들이 재고를 관리하는 데 한층 쉽게 해준다.
최근 IT유통업계에 일고 있는 변화 중 하나는 JIT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이는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이다. 제품을 적기에 공급한다는 것이다. 굳이 JIT와 타임 투 마켓의 의미를 따지자면 둘 다 재고를 줄이는 방안이지만 전자는 재고율 제로에 도전해 부품 재고에 따른 손실을 막는 데 초점을 두고 있으며 후자는 적기공급을 통한 마진의 극대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체들이 어떤 제품을 적기에 시장에 공급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제조업체들은 흔히 부품 업체들과의 관계에서 갑의 입장에 있어 JIT를 추진하기 용이하지만 유통업체들은 자금력 때문에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까지 유통의 헤게모니를 유통업체들이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시장 상황에 맞게 제품을 공급하려면 가격관련 ‘리스크’가 따라붙는 재고확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타임 투 마켓을 지향하는 업체들은 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력과 앞을 내다보는 예측력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최근 몇몇 유통업체들이 시도하고 있는 경영기법들은 기존의 한국적 유통관행에 젖어있던 유통업체의 틀을 깨는 것이어서 그 성공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PC주변기기 유통업체인 제이씨현시스템(대표 차현배)이 최근 ERP시스템을 도입한 데 이어 PC디렉트(대표 서대식)도 ERP를 준비하고 있다. 또 인텍앤컴퍼니(대표 조덕현)는 자체적인 자원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적기납품과 무차입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인터뷰- 인텍앤컴퍼니 조덕현 사장
“어떤 거창한 경영이론이 기업을 이끄는 것은 아닙니다. 구성원들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해주고 경영자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지 않도록 위험관리경영을 한다면 어떤 회사든지 불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덕현 인텍앤컴퍼니 사장의 경영철학이다. 매출보다는 적정 이윤이 중요하고 이윤보다는 고객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의 생명은 이윤 창출이라는 항간의 상식에 대해서도 그는 다소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초창기에 기업의 최대 목표는 이윤 창출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파트너십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출과 이윤은 고객과의 파트너십에 따른 결과물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우리 회사와 고객이 모두 윈윈(Win-Win)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조 사장은 또 반도체와 네트워크 장비부문은 자동차 생산에서처럼 JIT를 도입하기에는 여건이 맞지 않지만 백로그(back log:배달이 예정된 물량)를 효과적으로 유지한다면 고객들에게 적기공급을 할 수 있게 돼 본사의 재고부담을 줄이고 고객들에게도 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의 경우 JIT를 구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ERP 등의 각종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중소기업은 이러한 시스템에 인간적인 측면이 고려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한다. 고객들에게는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솔루션을 제공하고 본사 입장에서는 위험관리 능력을 감안한 수준에서 재고를 유지함으로써 안정적인 경영을 한다는 것이 조 사장의 생각이다.
요즘처럼 기술변화 속도가 빠르고 가격이 불안정할 때에는 시류에 따라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민첩성이 JIT를 가능케 하는 경쟁력이다.
<박영하기자 yhpark@etnews.co.kr>
많이 본 뉴스
-
1
삼성전자, 4000억 온누리상품권 푼다…5조 사회 기여 '시동'
-
2
엔비디아, 韓 R&D 센터 짓는다…젠슨 황 “이미 인력 채용 중”
-
3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결국 '과반' 지위 잃어…2·3 노조는 세불리기
-
4
이통사, 통합요금제 맞춰 온라인 요금제 20~50% 줄인다
-
5
단독애플페이 교통카드 충전에 '카카오페이' 추가된다
-
6
앤트로픽, AI 에이전트 보안 백서 공개… “제로트러스트 적용해야”
-
7
中 지커 “한국서 올해 7X 2000대 판매 목표”
-
8
월급쟁이부자들, 삼성전자 출신 김상효 CTO 영입
-
9
[컴퓨텍스 2026]대만에서도 빛난 'K-반도체 열풍'
-
10
젠슨 황, 최태원-구광모-이해진 총수와 홍대서 '삼소' 회동
브랜드 뉴스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