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심각해지는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국제적인 연대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보격차는 이미 한 국가 차원을 넘어 국제적인 이슈로 떠 오른 지 오래다. 특히 정보기술을 활용해 정보를 집적하고 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즉 ‘정보강국’과 ‘정보약국’ 사이의 격차는 모든 국가가 인정할 정도로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과거 전화가 거의 유일한 기본 전기통신 미디어 시대에서는 각 나라가 전화를 ‘보편적 서비스’로 정하고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 사회, 국경이 점차 없어지는 글로벌 환경에서는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불충분하다.
이같은 배경에서 각 나라는 자국의 이해관계는 물론 사상과 이념을 초월해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정보격차, 특히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정보격차가 중요한 이슈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 지난 99년 일부 선진국가를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정보격차를 위한 연대 움직임은 2000년을 넘어서면서 아연 활기를 띠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보강국의 시혜 차원에서 진행된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정보격차를 위한 각 나라의 노력은 점차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유엔의 연구보고서
정보격차와 관련한 국제 연대 움직임의 시발점은 유엔의 정보격차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6월 유엔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 정보격차 해소를 촉구하는 정보통신 기술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유엔은 인터넷 사용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나라별 격차와 이에 따른 경제·사회적 혜택의 불균형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음을 지적했고 세계의 인터넷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선진국은 개도국이 지고 있는 채무의 1%를 탕감해주고 이 자금으로 정보통신기술 개발에 나서도록 하는 것과 같은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보고서는 같은 해 7월 일본에서 열리는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 제출돼 국제적인 연대를 위한 전기를 마련했다.
◇오키나와 G8 정상회담
지난 7월 G8 정상회담에서는 ‘글로벌 정보사회에 관한 오키나와 헌장(Okinawa Charter on Global Information Society)’을 발표했다. 19장으로 되어 있는 IT헌장은 경제발전과 풍요로운 삶을 위해 정보기술의 발전을 더욱 촉진하고 선후진국간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IT헌장은 정보기술이 21세기의 틀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라고 규정하고 이 힘을 지속적으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강화, 통치의 투명성, 국제적 평화와 안정의 촉진 등을 위해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정보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선진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G8은 어느 나라 국민이든지 글로벌 정보사회에 참가할 수 있고 누구도 이런 이익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는 ‘포괄의 원칙(Principle of inclusion)’을 천명했다. 헌장은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적당한 가격으로 통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장환경 조성과 정보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농촌 오지 등 정보통신 환경 개선, 이용자에게 편리한 기술개발, 정보기술에 정통한 인재육성 등을 장려하기로 했다. 또 정보사회 정착을 위해 기업간 경쟁과 민간기업,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G8 정상은 정보기술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닷포스(Digital Opportunity Task-force)’를 만들기로 결의했다.
◇닷포스 보고서
닷포스는 최근 선·후진국간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기초보고서와 권고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G8은 권고안을 위한 검토작업에 착수했으며 올해 6월 제네바회담에 이를 상정해 G8 공동 추진 프로젝트를 끌어내는 성과를 올렸다. 닷포스 보고서는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컴퓨터는 말할 것도 없이 전화를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으며 대부분의 후진국은 민간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인프라나 시장 자유화 정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언급하고 교육평등, 성평등, 빈곤퇴치 등 유엔의 중점 목표가 인터넷 기술을 통해 더욱 빠르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서는 북·남반구 정책과 전략 전문가로 구성된 ‘국제 개발 자원 네트워크(International eDevelopment Resource Network)’ 구축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보고서는 또 국제보건기구간 협력 증대와 비영어권 콘텐츠의 온라인화 확대에 관해 언급하고 후진국의 민간기업과 비영리기관이 원격교육과 인터넷기반 교육을 위한 학교 네트워크화에 나설 것을 권하고 있다.
◇ASEM 정상회의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도 각국 정상들은 정보와 통신 기술 분야에서 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국가내 또는 국가끼리 경제·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기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정보격차 해소 사업, 정보통신 기술에 관한 세미나, 트랜스 유라시아 정보통신망과 같은 사업을 ASEM 신규사업으로 승인했다.
◇APEC 정상회의
지난 11월 브루나이에서 열린 제8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는 WTO 뉴라운드 출범을 앞두고 37개 항목의 ‘정상선언문’을 채택했다. 정상선언문은 부와 지식의 폭넓은 격차를 해소해 지역내 모든 주민들이 세계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을 결의했다. 정보통신 기술의 혁명이 세계 경제발전을 촉진하고 있음을 재확인하고 이의 보급에 적극 나서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해 2010년까지 모든 회원국의 도시·지방·농촌지역 주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첫 단계로 2005년까지 개별 혹은 집단적으로 인터넷에 접속되는 주민수를 3배로 늘리기로 했다. 또 막대한 규모의 인프라 개발, 인적 능력 배양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같이 정보격차는 각종 국제회의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다.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각 국의 노력을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국제 연대 움직임은 시민단체 차원의 NGO다. 정보화를 위해서는 국경을 초월해 자발적인 소외 계층의 정보화 단체와 시민 단체가 힘을 모아 정보화 시민 운동을 벌이는 일이 중요하다. 아직은 NGO 차원에서는 이렇다 할 연대 움직임은 없지만 온라인을 통한 국제적인 협력과 교류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NGO 차원에서도 정보격차를 위한 상시적인 국제 회합과 성과가 조만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보격차를 위한 국제적인 관심이 정보 선진국이 새로운 디지털 시장 논리를 범 지구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는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인터넷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정보와 인터넷에 대한 접근, 활용을 보장한다는 정보격차 해소의 취지는 누구나 정보사회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인간 평등의 이념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선도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국가간 정보격차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보격차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 시점을 우리나라 역시 정보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정보격차 마켓플레이스 화제
미국 워싱턴 소재 세계자원연구소(WRI)는 최근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 계획을 지원하고 선후진국 간 디지털 정보격차를 위한 마켓플레이스(http://www.digitaldividend.org)<사진>를 오픈해 화제다. 이 마켓플레이스는 지난해 미국 시애틀에서 열렸던 ‘디지털 정보격차 콘퍼런스’에서 탄생한 사이트의 한 코너로 시작됐다.
이 사이트는 현재 개발도상국의 중소기업과 미국·유럽의 이름 난 디지털기업을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은 정보 교류와 교환 수준의 정보제공 센터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곧 각 나라의 기업이 국경을 넘어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 팔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로 재탄생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정보격차를 위한 민간기업 차원의 교류와 온라인 거래가 이루어 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WRI 사이트에 등록된 350개 조직의 3분의 1은 저소득 지방 도시와 촌락에 컴퓨터 및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젝트 그룹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밖에 이 사이트에는 75개 다국적 기업과 40개 정부 기관이 회원으로 등록돼 정보격차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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