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소사이어티
데이비드 크로토·윌리엄 호인스 지음, 전석호 옮김, 사계절 펴냄
지난날 우리 의사소통의 주류를 이뤄온 고전적 전형은 몸짓과 언어에 의한 면대면 상호작용이었다. 그러나 간접체험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새로운 미디어 양식이 속속 개발됨으로써 우리의 삶은 엄청난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금주 미국 동부를 강타한 끔찍한 테러사태를 실시간으로 전해준 미디어가 없는 상황을 연상해보라. 라디오·신문·전단·전화 거기에 TV나 인터넷 등이 없었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고 보냈을 것인가.
인간 의사소통 행위의 일대 전환을 선도한 주요 미디어들은 모두 당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종전의 것과는 판이한 새로운 미디어였다고 할 수 있다. 미디어 발달사는 △수메르인의 진흙판 문자기록으로 소급되는 BC 3500년께의 문자미디어 △1456년 구텐베르크 인쇄술의 출현에 즈음한 인쇄미디어 △1844년 모스 전신의 발명을 계기로 한 전파미디어 △에니액(ENIAC) 컴퓨터가 개발된 이후의 전자미디어 시대의 4단계로 구별된다. 그 중에서도 전자 커뮤니케이션과 직결된 오늘날 뉴미디어의 특성을 추출하자면 즉시성·상호성·초월성·융합성·선택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즉시성은 빛의 속도에 버금가는 신속한 온라인 정보처리 및 정보교환을 통해 확증할 수 있으며 상호성은 정보의 선별 및 통제가 수용자로 대폭 이관함으로써 양방향적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오늘날의 정황에서 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초월성은 시공간 경계는 물론, 상식과 논리를 뛰어넘는 임의적 구성 및 편집을 통해 현시되는 초현실적 장관을 통해 실증할 수 있다. 융합성은 디지털 기술에 의해 소리·문자·그래픽·동영상 등의 혼융이 촉진되고 있는 정보환경의 변화상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또 선택성은 다수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방송(broadcasting)이 협송(narrowcasting) 체제로 다원화되고 있는 현금의 추세로부터 진단할 수 있다.
뉴미디어의 대두와 더불어 첨예화하는 사회적 쟁점들로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3대 테제인 차등화, 동질화, 퇴폐화를 제시한다.
차등화 테제는 다량의 신속한 정보유통이 ‘사회구성원의 공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개방적 사회체체로 인도할 것인가, 아니면 소수 엘리트가 사회적 지배력을 보다 공고화하는 독점체제를 지향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대변하는 것이다. 동질화 테제와 관련해서는 ‘경쟁없는 상태에서는 천편일률적인 상품이 범람한다’는 문화상품 일반론에 기초해 소유권 집중도는 미디어 상품의 동질화 효과를 초래한다는 명제를 제기한다. 퇴폐화 명제는 주로 무미건조한 현실을 열락적 양식으로 전환하는 매스미디어에 대한 대중적 열광에 관한 비판 및 역비판과 관련된 것이다. 55년 5월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돌은 미국 제일의 오락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섹스와 폭력에 대한 파괴적 메시지를 남발하는 사악한 대중문화를 건전한 미국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협요소로 질타하는 인상적 연설을 행했다. 당시 돌이 겨냥한 비판대상은 타임워너사였는데 훗날 그는 타임워너사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고 당 회사에 유리한 탈규제법에 동의한 바 있다.
이같이 도덕성 원리에 근거한 통제방안은 미디어의 퇴폐성을 제어하는 데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함이 실증된 셈이다. 대신 건전한 상식의 힘을 역설하는 저자들은 그러기 위해서는 미디어 쾌락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분석이 선행돼야 함을 강조한다.
현실이 아닌 미디어 메시지는 다소 부풀려지는 것이 상례다. 과장된 메시지에 경도되지 않고 현상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미디어 수용자의 주체적 해석 역량으로 그러한 경우는 애당초 저항의 무모성을 입증하기 위해 중국정부의 묵인 하에 해외로 유출된 탱크 앞 단독저지 사진 한 편이 민주화운동 탄압을 상징하는 물증으로 세계 도처에서 역으로 해석된 사례, 혹은 미국의 인기 드라마인 ‘댈러스’나 ‘코스비가족’이 국가별·인종별로 달리 판독된 사례 등을 통해 식별할 수 있다.
사회학과 언론학이 동반학문임을 재삼 일깨워준 이 책은 저자들의 학문적 소양과 양식, 또 역자의 보이지 않은 노고를 문장마다 느낄 수 있는 ‘잘 쓰고 잘 옮긴’ 역저의 하나로 생활 도처에 산재한 미디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독자가 원해온 그런 책이라고 확신한다.
<고려대 김문조 교수 pkim8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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