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뿜는 전자무역전쟁>(2)전자무역의 실체

<전자무역의 실체>

 아직 전자무역의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 국제적으로는 아직 전자무역이라는 용어조차 확립돼 있지 않다. 여러 국제회의에서 전자상거래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국가간 제도적·법률적 문제가 다루어지기는 하지만 이를 딱 잘라 전자무역이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그냥 전자상거래 문제로만 일컬어진다.

 전자무역이 명확한 개념으로 정립돼 있지 않은 것은 전자상거래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기존의 상거래 행위는 출발점부터 국내 거래 즉, 로컬 거래와 국가간 거래 즉, 무역으로 구분돼진다. 로컬이냐 수출이냐에 따라 그에 수반되는 행위가 너무나 큰 차이가 나는데 이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상거래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상거래는 인터넷을 통해 상거래를 하기 때문에 시공의 제약을 받지 않아 상거래의 출발점에서 굳이 로컬이냐 무역이냐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 상거래 과정에서 소비지국이 어디냐에 따라 무역이 될 수도 로컬거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자무역의 성격은 앞으로 오프라인 거래에 바탕을 둔 기존 국제 경제질서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전자무역에서 거래되는 대상물을 상품으로 보아야 하느냐 아니면 서비스로 보아야 하느냐 하는 논의는 다분히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는게 이들의 견해다. 장차 전자무역은 무역과 국내거래가 구분되지 않은 국제질서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WTO가 자유무역체제를 목적으로 출범했지만 아직도 많은 상품과 서비스 분야를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무역은 이같은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소비지국의 제한이 없는 전자무역은 좋든 싫든 모든 국가의 제도나 환경을 하나로 통일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비즈니스모델 표준화다.

 비즈니스모델이란 업무 프로세서와 그에 필요한 문서양식과 같이 모든 비즈니스에 필요한 절차나 형식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을 말한다.

 그동안은 국가마다 언어권마다 제도와 관습이 달라 비즈니스모델이 천차만별이었지만 전자무역에서는 이를 수용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과 사람이 의사를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적 장치와 전자적 장치가 의사를 교환해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차이점도 의사소통에 방해가 될 수 있다.

 비즈니스모델이 표준화되면 세계 모든 국가의 업무 프로세서가 똑같아지고 문서양식도 획일화된다.

 당연히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나 환경도 같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은 국가마다 언어권마다의 특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기존 국제경제질서와 이를 거부하는 전자무역질서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WTO가 상품이냐 서비스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면서까지 전자무역을 기존 체제에 담으려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몸짓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기존 체제의 항거는 오프라인 무역의 힘이 전자무역의 힘보다 강할 때까지만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자무역 비중이 높아질수록 기존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체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게 도도한 흐름이라는 것이다. 전자무역이 기존의 오프라인 무역에 비해 효율성이 매우 높고 시간이 갈수록 전자무역 비중이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라는 것이다.

 지난 72년 GATT가 출범하면서 상품의 자유무역체제가 만들어졌던 국제경제질서는 지난 95년 우루과이라운드를 계기로 금기시돼 왔던 서비스분야로까지 자유무역체제로 전환되기에 이르렀다. 서비스 자유무역체제는 아직도 미완성이지만 각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말에 있을 도하 WTO 각료회의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도하 각료회의는 전자무역으로 인해 야기되는 또다른 경제질서를 만들어가는 뉴라운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70년대에는 상품이, 90년대에는 서비스가 세계경제질서를 변화시킨 주역이라면 2000년대에는 바로 무역이다.

 

 ◆<인터뷰> KTNET 이상열 사장

 ―전자무역은 무역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전자무역이 전통적인 무역의 대안이 될 수 있나.

 ▲인터넷 통신수단의 발달은 국가간 상거래시 수반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손쉽게 해결해주고 있다. 우선 관련문서의 디지털화로 비용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계약이나 문서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미 많게는 50여종에 달하는 무역서류를 책상에 앉아서 처리할 수 있다. 아직 실효성 측면에서는 오프라인방식에 뒤처지지만 시장조사나 바이어 발굴, 판촉 등 마케팅도 가능하다.

 전자무역과 전통무역의 효율성을 따졌을 때 궁극적으로는 전자무역이 전통무역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거래 관행상 비대면 접촉을 통해 상행위를 하는 부분에 대한 저항이 심하다. 특히 언어와 습관이 다른 국가간에는 더욱 그러할 것으로 보이는데.

 ▲물론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협상을 하고 계약을 하는 것과 모니터만 쳐다보고 똑같은 행위를 한다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때문에 무역뿐 아니라 상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결제나 검수는 전자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기술적으로 보안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점도 있지만 전자무역이 아직 사람들에게 수용되기 어려운 점도 크다고 본다.

 이때문에 전자무역이 기존 무역을 이른 시일안에 대체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상당기간은 전통무역의 단점을 메워주는 보완 역할을 할 것이다.

 ―최근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은 산자부 ‘전자무역 육성시책’의 핵심 주체기관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가 전자무역 정책에서 KTNET이 담당하는 역할은 무엇인가.

 ▲KTNET은 지난 10여년간 우리나라 무역자동화 사업을 선도해 왔다. 그 결과 국가 전체적으로 연간 4조원의 수출입 비용절감 효과를 얻고 있다. 따라서 KTNET은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가 전자무역 네트워크 구축과 운영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무역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전자무역 활성화 대책이 지나치게 KTNET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전자무역에 대해 섣부른 이상기대를 갖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나 유관 공공단체는 민간업체의 개별 마케팅까지 지원해주지는 못한다. 이번 종합무역자동화사업의 핵심도 50여 단계의 국내 무역절차를 단절없이 처리할 수 있는 무역자동화망 구축에 있다. 따라서 산자부와 KTNET이 추진중인 전자무역 네트워크는 무역업체들이 누구나 손쉽게 수출입 업무를 전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범용 인프라로 봐야한다.

 ―정부는 KTNET의 지분구조 개편작업을 추진중이다. 지분구조 변경은 왜 필요한가.

 ▲현재 KTNET은 100% 무역협회 출자회사다. 하지만 KTNET의 역할과 사업내용으로 볼 때 보다 많은 무역 관련 일선업체와 유관단체의 자본참여가 필수적이다. 자본참여를 통한 강력한 유대를 바탕으로 전자무역 활성화를 꾀해야 한다. 이미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 경쟁국 무역자동화 전담기관들은 모두 자국 무역커뮤니티들의 자본 참여를 바탕으로 설립돼 있어 관련 사업추진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전자무역’이란

지금도 관련 학계나 일선 업계 사이에서 전자무역의 정의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전자상거래의 특수한 형태로, 국가간 B2B 전자상거래의 한 형태’ ‘전자상거래의 통합·발전된 형태로 기존 아날로그 제품뿐 아니라 무체물의 디지털 제품 또는 가상재화의 수출을 포함한 글로벌 커머스’ 등이 전자무역을 일컫는 정의들이다.

 개정된 대외무역법상에는 전자무역이 ‘무역의 일부 또는 전부가 컴퓨터 등 정보처리능력을 가진 장치에 의하여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이루어지는 거래’로 정의돼 있다.

 전통적인 전자무역은 무역업무의 전자적 개선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의 등장으로 계약체결 이전 단계인 마케팅 과정과 계약체결 이후 단계인 지불·결제·물류 등 무역 전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이른바 광의의 전자무역 개념으로 바이어 발굴서부터 네고, 상품 카탈로그 교환, 대금결제, 배송 등에 이르기까지 무역 프로세스상의 전과정을 인터넷 등 전자적인 장치를 이용해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무체물인 디지털상품의 무역거래도 포함된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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