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평등사회를 만들자>(33)법제도 개선

 장애인 및 노령자들의 정보격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말 제정된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을 지원할 수 있는 하위 법령과 지침 등을 하루빨리 제정하고 장애인 복지법·통신관련 법률 등 관계 법령을 정보소외 계층의 정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하거나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선진 각국들은 장애인이나 저소득층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통신사업자나 정보 단말기 업체들에게 관련 서비스나 단말기의 개발 및 공급을 의무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관련 법령의 정비 및 개선이 아직은 아주 미흡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정부 및 관련 기관 등을 중심으로 접근성 지침 등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논의도 비교적 활발해지고 있는 편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이같은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선진국들은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어떤 제도나 지침을 마련해 운용하고 있는지에 관해 주로 장애인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본다.편집자  

 미국·호주·캐나다·일본 등 선진 각국은 장애인들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다방면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집행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로 각종 지침·가이드라인·표준 등을 제정해 운용하고 있다.

 이같은 제도적인 장치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이젠 정부나 사업자들이 장애인 관련 단체나 시민단체들로부터 격렬한 저항을 받을 만큼 성숙한 사회 의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미주리주에서 지난 97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95와 호환되는 장애인용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가 개발될 때까지 윈도 OS의 패키지 구입을 지연시킨 사례도 있었으며 지난해에는 미국 시각장애인연합회가 미국 최대 정보제공사업자인 AOL을 상대로 법원에 제소해 정보격차에 대한 사업자들의 경각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올초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구체적인 지침이나 규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전산원의 조정남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도 선진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법적 강제력이 없는 지침이라도 일단 제정해 정보격차 해소에 관한 사회 전반의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연구원은 특히 “제정된 지침의 이행 상황을 평가하고 관련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취합해 우선적으로 공공 부문에서 정보통신기기 및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각국의 사례

 △미국=이미 지난 90년 제정된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을 통해 통신·고용·공공서비스·공중이용시설·교통수단 등 모든 분야에서 장애인의 접근 및 이용 보장을 규정하고 있다. 통신분야의 경우는 TRS(Telecommunication Relay Service)의 실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TRS란 청각 장애인의 음성전화이용을 지원하는 서비스인데 교환수를 이용해 청각장애인의 문자전화기(teletypewriter·TTY)에서 나오는 문자를 음성으로 전환해 주고 일반전화기에서 나오는 음성을 문자로 실시간으로 전환해 일반인과 청각장애인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토록 하는 서비스다.

 미국의 경우 지난 93년부터 TRS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에 들어가는 부대 비용을 모든 통신 사업자가 분담한다는 원칙 아래 TRS 기금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는 발성이 부정확한 언어 장애인이나 수화사용자를 위한 부가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지난해 7월부터는 ‘711’ 전용 전화번호를 만들어 언제든지 TTY 사용자와 일반인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지난 96년 개정된 통신법(telecommunication act)을 통해 시각 및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 및 화면 해설 방송 규정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방통신위원회는 연차적으로 자막방송을 확대해 2006년 1월 1일까지 모든 신규 제작 영상물에 화면자막을 제공하기로 했으며 지난해부터는 화면해설 방송도 실시하는 규정을 마련해 자막방송과 화면해설방송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의 통신법은 이와 함께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주변장치나 특수 보조장치들의 호환성 규정도 두고 있다.

 재활법(rehabilitation act)은 통신법보다 훨씬 강한 어조로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 간 정보 및 서비스 격차 해소에 노력할 것을 연방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취지에 따라 현재 모든 연방 정부기관의 웹사이트들은 장애인이 이용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개편됐다.

 또한 재활법 508조는 연방 정부 산하 기관에 조달하는 모든 전자·정보통신기기에 접근성을 포함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연방정부의 예산과 구매력을 감안할 때 사실상 반강제성을 띠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같은 연방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발맞춰 텍사스·미주리주 등 주정부는 연방정부와 유사하거나 훨씬 강력한 법령과 규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영국=지난 95년부터 장애인 차별금지법(disability discrimination act)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고용, 상품·시설·서비스 제공, 교육, 교통수단 등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 차별 금지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서비스 제공자가 일반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장애인에게 제공하지 않거나 일반인과 다른 조건을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서비스 제공자의 관행·약관·절차 등이 장애인의 서비스 이용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어렵게 할 경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국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TRS를 도입하고 있는데 영국통신사업자인 BT는 장애인을 위해 TRS를 의무적으로 도입해야만 한다. 특히 사회보장정책의 일환으로 저소득 청각장애인들이 문자전화기 구입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호주=지난 92년부터 장애인차별금지법(disability discrimination act)을 제정하여 고용·교육·공공서비스 등 분야에서 장애인에 대한 직·간접적인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특히 웹의 접근성 제고를 위해 가이드 라인을 제정 운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호주 또한 TRS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필요한 경비는 각 통신회사들이 분담하는 보편적 서비스 기금에서 충당하고 있으며 보편적 서비스 의무사업자인 텔스트라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전화기를 저소득 장애인에게 무상으로 보급하고 있다.

 △일본=우정성에서 고시한 장애인 등 전기통신설비 접근성 지침 제515호와 통상산업성의 장애인 및 고령자 등 정보처리기기 접근성 지침 제362호를 고시해 시행하고 있다. 우정성 전기통신설비 접근성 지침의 경우 전화·팩스·휴대용 정보단말기 등 전기통신 설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서비스·제품의 개발 및 설계시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통상산업성도 지난해에 ‘장애인·고령자 등 정보처리기기 접근성 지침’을 새로 만들어 고시했다. 이 지침은 표준적인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의 기능과 별도로 대체 기능을 마련해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타 국제기구의 움직임

 정보통신 분야의 대표적인 국제기구인 월드 와이드 웹 컨소시엄(W3C) 산하 WAI(Web Accessibility Initiative)는 인터넷에 대한 장애인과 고령자의 사용을 보장하기 위해 나름대로 설계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WAI는 특히 장애인들과 고령자들의 웹사용을 지원하기 위해 웹접근성 지침을 제정, 각국 정부 및 사업체에 채택을 권고하고 있다.

 WAI의 웹접근성 지침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을 보다 용이하도록 하기 위해 시각정보와 동일한 청각 형태의 대체 정보를 제공할 것 △색깔에만 의존하지 말 것(중복되는 형태의 단서를 제공할 것) △모든 그래픽 객체에 대해 문자정보를 제공할 것 △자연언어를 사용할 것 △객체 요소를 활성화시킬 때 마우스 외에 키보드나 음성으로도 가능하게 할 것 △네비게이션 구조와 메커니즘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할 것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용의 변화를 사용자가 조절할 수 있게 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WAI의 권고에 따라 EU는 회원국에게 2001년까지 공공 웹사이트의 장애인 접근 보장을 위해 WAI의 채택과 법제도의 정비를 요구하고 있으며 일본은 장애인의 정보통신기기 및 서비스 접근을 위해 정보처리기기 접근성 지침(2000년 6월 5일), 정보통신설비 접근성 가이드라인(2000년 7월)을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결론

 업계 전문가들은 이같은 세계 각국의 정보격차 해소 노력에 비추어 볼 때 국내에서도 이같은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지상파 방송사들이 청각 및 시각 장애인를 위해 수화방송이나 캡션 방송을 내보내고 있으며 시각 장애인 전용 라디오 방송인 사랑의 소리 등이 전파를 타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용 통신 서비스 등은 아직 보편적 서비스 개념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장애인들이나 노령자들이 아무런 불편없이 정보기기나 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 지침, 보편적 서비스 기금 마련 등의 조치가 강구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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